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 흔적들 | 나은

by 삶예글방


시원 님, 아쳅토 책방의 두 번째 시작을 이렇게 마음 담아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새로운 한 주를 행복한 마음 가득하게 보냈어요. 긴장과 걱정이 앞서던 준비 중이던 지난주 일요일과 다르게, 오늘은 한결 마음이 좋은 일요일을 맞이했네요. 물론, 아직 공간은 모두 완성되지 않았고, 가꾸어갈 것들이 한참이지만요?


저는 오늘 산책 모임을 다녀왔어요. 남산 소월로를 천천히 걸었답니다. 영하의 추운 날씨가 예상되오니 바깥 활동을 자제하라는 경보문자가 계속 들어와 고민했지만, 취소하지 않고 예정대로 진행했는데요, 다녀오길 잘한 것 같아요.


이 계절에만 만날 수 있는 찬 공기 속을 거니는 맛이 있는 것 같거든요.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코 끝과 볼, 눈꺼풀까지 얼어붙을 것 같이 얇고 투명해지는 듯한 추위에 걷지만, 또 햇살은 눈부시게 따스한 그런 날씨였어요. 그렇게 차가운 공기에 따사로운 햇빛이 함께 맞아주는 날씨면, 그런데 거기에 온갖 미세먼지조차도 얼려서 날려 보낼 매서운 바람 덕분에 저 멀리까지 서울 한복판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의 산책로를 걷는다면 더 멋스러운 경험이 추가됩니다. 평소에 눈앞에 한 뼘 정도로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멀어봤자 30cm~ 1미터 이내의 거리로 책이나 화면을 주로 보는 초 근거리만 집중해서 응시하는 생활을 하다가 멀리 떨어진 산 봉우리, 너르게 펼쳐진 손톱만치 작아진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들, 부드럽게 떠내려가는 구름들까지 - 넓고 멀리 보는 시간을 눈에게 허락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좋더라고요. 모처럼 멀리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차분히 걷는 시간을 갖다 보니 깨닫게 되는 거예요. 눈까지도 긴장과 압박을 주고 살고 있었구나 하면서요.


시원님의 질문을 받고 놀랐어요. 사랑하는 데에도 습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거든요. 놀랐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나는 어떻지? 계속 사랑하기 위해 어떤 걸 시도해 봤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하고요.



제가 한 노력은 어떤 것이 있을까 조금 긴 시간까지 꼽아보며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한 가지가 떠오르더라고요. 바로 '체면이나 자존심 앞세우지 않기'입니다. 가까울수록,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너그럽게 마음을 열고 약한 모습, 때론 옹졸해지기까지 하는 그런 모습을 드러내며 미안해할 줄도 알고, 부끄러워할 줄도 알면 좋을 텐데요. 저는 몇 년 전까진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요. 늘 괜찮은 척, 실은 진짜 기분이 상한 아주 사소한 지점이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표면적인 다른 그럴싸한 명분을 삼아 상대에게 불편한 감정을 내색하곤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요즘에 제가 노력하는 것은 어떤 게 있을까 했을 때, 사랑을 위한 연습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신경 쓰며 지켜보려고 하는 것은요, '상대에 대한 판단을 최후로 보류하는 것'입니다. 쉽게 단정 짓거나 판단을 내려버리면, 알았다고 생각하기 쉽고, 가치판단으로 이어지기 쉽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한 전해 들은 이야기도 말고, 좋든 싫든 첫인상이나 만남 때 느꼈던 단상만으로도 말고, 천천히 지켜보며 - 상대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면 가능하면 직접 물어보기도 하면서 편견을 줄여가며 상대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마주하려고 합니다.






시원님의 이번 주 시선집을 읽고 편집하며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가려는 어른의 일을 고민하는 사람이 글 친구여서 참 행복하다는 생각과 함께요. 당연할 수 있는 이야기의 본질을 너무 동의하고 인정하는 나머지, 무뎌지고 급한 일들에 순위가 밀리며 잊히곤 할 때, 시원 님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주는 문장을 건네주는 친구가 있어서 참 좋습니다.


삶이 힘들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을 때, 곁에 있어주겠다 말하고는 실제로 곁에 있어주는 이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었는지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덕분에 제가 지금 생을 이어가며 계속 쓰고 있고요. 그래서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건네는 삶을 살고 싶기도 합니다.


우리가 차곡차곡 쓰고 또 밀어내며 다시 써내며 감응하며 살아내는 동안에, 자연스레 일상의 고요한 기적이 피어나기를 바라봅니다.


어쩌면 그런 주술 같은 마음을 담아 기도문을 써내는 심정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버티지 않아도 충분히 살 이유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삶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니까요.


저도 시원 님의 새로이 시작될 올 한 해의 삶과, 또 앞으로의 여정에 오래도록 함께 있어드리고 싶습니다.

스스로에게 쉽게 실망하고, 작은 시도에도 곧잘 넘어지곤 하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 제 삶에서의 어른의 몸짓이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하고 움직여보아야겠어요.



우리의 거칠고 엉성한 흔적들이 누군가의 곁을 향하고 감싸안는 장면을 그려보며

나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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