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지 못하는 시간이 채워준 마음을 반갑게 적어보내요.
시원 님, 저는 어젯밤에 우리 합평모임을 마치고 편지를 마저 쓰다가 잠이 오기 시작했어요. 시원님이 따로 메신저에 찍어 보내주신 편지를 먼저 좀 읽자 싶어 열어 보다가 잠에 들었어요. 대신 모처럼 일찍 깊은 잠에 들었답니다. 덕분에 더 평온하게 아침을 맞이한 것 같아요. 감사해요.
세상과 멀찍이 떨어져 읽는 생활 중인 시원님, 그렇게 부러울 수 없는 일상을 보내고 계시네요. 저는 한 주 동안 글을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생기는데 쓰지 못하는 상황의 날들을 보냈어요. 참, 며칠간 책도 거의 못 읽었답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오롯이 집중해 글을 쓰는 게 참 낯설고 괜시리 애틋하기까지 해요.
전혀 다른 일상을 보냈지만 시원님과 비슷한 질문을 품고 지냈어요.
인간은 어떻게 인간이 되는가.
어떤것이 인간일까.
인간이란 존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물음표가 계속 들어차있었던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질문에 응답하듯 삶이 그 물음에 느낌표를 얻는 시간을 바로 이어서 건네주어 만나게 된 것 같고요.
수린의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동생 부부가 병원에 가있는 4일 동안 파주 집에서 엄마와 함께 첫째 아이를 돌보았어요.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고, 달래주고, 씻겨주고 모든 시선과 마음을 집중해 아이를 돌보면서 보낸 3박4일간의 육아 경험은 이전에 없던 강렬한 생각 두 가지를 일깨워주었어요.
첫째는 저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사회의존적인, 관계의존적인 동물인가하는 당연한 진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 거예요. 실은 저 스스로 꽤나 어려서부터 독립적인 성향으로 씩씩하게 잘 지내왔다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 의지를 잘 못하는 성향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돌아보니 전혀 아닌 것 같아요. 충분히 돌봄 받고, 주변 관계에 의존하며 그 덕분에 살아왔다는 생각이 더욱 들어요.
두번째는 그만큼 어렵게, 누군가의 헌신과 돌봄으로 자라나는 인간 한명 한명은 모두가 그 생명 자체로 존엄하다는 것, 보편적으로 소중하고 값진 존재라는 생각도 했어요. 누구도 더 특별할 수 없고, 그래서 모두가 값진 존재라면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대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이렇게 당연하고도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을 아이를 낳고 기르고 있던 부모로 사는 인간들은 자연스레 체감하며 삶의무게를, 진짜 책임이란 무엇인지 알고 살아가고 있던 거겠죠? 나만 몰랐던 이야기처럼, 머쓱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어제는 저녁을 먹으며 박찬욱 감독의 영화 「 어쩔수가 없다 」 를 봤어요. 원작 소설을 읽긴 해서 내용을 어느정도 알고있다 생각하고 큰 기대 없이 봤는데, 극명하게 갈리는 평가에 비해 저는 참 좋았어요. 어쩜 이 이야기를 이렇게 펼쳤을까 - 싶어 그 각본력에 박수를 계속해서 치고 싶었답니다. 그리곤 또 생각에 잠겼죠. 정말 어쩔수 없는 걸까. 어쩔수 없는 건 내가 아니라 이 세상, 삶 아닐까. 하며 삶의 위기에 어떻게 마주할건지 인간의 선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원 님이 바다에 대해 글을 써주시니 읽는 동안 상상했어요. 바다를 곁에 두고 사는 삶은 어떤 삶일까. 언제든 곧 나가면 바다가 보이는 일상은 어떤걸까. 하고요. 바다를 마당처럼 품는 유년시절이라니. 가져본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어 신기했답니다. 그치만 바다를 사랑해요. 그래서 바닷가에 살아보고 싶어 틈나는 대로 바닷가 마을 집을 알아보곤 한답니다. 그래서 선자마을도 바다를 넘어 가는 마을로 그린걸까요? 조금 더 바닷가의 삶에 대한 상상력과 이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입니다.
갈증과 마름 덕에 읽고 쓰는 일이 더 소중해진 한 주,
시원님의 시선집과 편지가 저를 틈틈히 촉촉히 위로했어요. 고맙습니다.
✴︎ 추신 : 「 파이이야기」 는 꽤 유명한데도, 아직 영화도 책도 보지 못했어요. 아마 시원님이 언급해주시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보지 않았을지 몰라요. 이번주에 틈을 만들어 꼭 한번 찾아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