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마음에서 왔는지 모르겠어요
시원님,
다부진 안부 감사해요. 잘 자는 며칠을 보냈어요. 덕분이에요.
잠이 올 때에 부릅뜨고 '할일을 더 하나만 하자', '하나만 더 하고 자자'하면서 잠이 깨도록 주섬거리다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요, 지난 주말에는 계속 잠이오면 눈의 신호에 맞춰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침대로 가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하나만 더 하려는 유혹을 이겨내고 쥔 손에 힘을 펴고 침대에 편안히 누워 잠을 청했답니다.
스크린타임도 2시간 가까이 줄고, 수면 시간은 1시간 이상 늘어난 것 같아요. 물리적인 시간 말고도, 머릿속이 더 맑고 기분도 좋았어요. 자기 전 고요한 밤의 순간에 몰입을 해보니 새삼스럽게 평화롭고 좋더라고요. 아 내가 불면증이 아니었구나, 욕망증이었구나. 하나만 더 이것만 더 하는 그런 욕망증이요.
시원님의 이번주 시선집 글과 편지를 읽고 제가 책상에 필사해둔 문장이 떠올랐어요. 유은 작가의 「 애도하는 귀 」 책에서 옮겨둔 것이랍니다.
상실에 대한 비관이나 자책이 아닌 진지한 연대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대화의 방식을 찾아본다. 다른 기억의 결들이 말과 말 사이에 깃든다. 말과 침묵, 응시와 행위의 틈에 다종다양한 물기의 지형이 생겨난다. 언제든 흐르고 고이고, 순환하는 순례 여정을 떠날 수 있는 기억의 공동체 -
언제까지나 잃은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 사이에 함께 흐를 수 있는 지형을 남겨두자는 말이 참 좋더라고요. 상실감만 안고서 어떻게 살아갈수 있냐고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모양으로 매만지고 돌보다보면, 아픔도 길이 될 수 있고 삶도 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또 애도라는 것은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게 흐르고 - 고이고 - 순환하는 여정을 떠날 수 있는 기억의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그런 연습을 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젠 잃어버린 아픔의 자리를 서둘러 채우려 하지도, 애써 감추려 하지도 않으려고 해요. 잠시 다시 존재를 품기도, 그 온도에 머무르기도 하면서 지금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제가 언젠간- 언젠간-이라며 상상만 막연하게 하던 소설쓰기를 시작할 수 있던 용기도 어쩌면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서 왔는지 모르겠어요. 기어코 지키고 싶었던 존재들, 하지만 지키지 못해 원통했던 감정과 여전히 저릿한 아픔을 기억하려고요. 이야기 속에선 더 다양한 방식으로 흐르는 상실의 이후, 남은 이들의 삶이나 그안에서 또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연과 같은 것들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시원 님의 말처럼 우리가 이야기를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존재여서 다행이고, 또 감사하네요. 왕과 사는 남자는 제목만 많이 이래저래 지나며 들어본 것 같은데 유명한가보군요! 어제 독서모임에서도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인스타그램에서도 종종 보이고요. 새로운 이야기라니, 궁금해서 또 찾아봐야겠어요.
이번 한 주도 우리를 살게 하는 이야기와 함께 울고, 웃으며 마음 따뜻한 한 주 보내시길 바라며
나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