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응하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기꺼이 오늘도 쓰며 나아가는 우리를 응원하며
나은 님, 이번 한 주도 무탈하셨나요? 지금 저는 정말 짬을 내서 편지의 답신을 적고 있어요. 분명 일요일 편지를 받고, 바로 답을 써야지 하고 다짐을 하고 왜 항상 마감일에 글을 적기 시작하는 걸까요? 지금은 물리치료실에서 대기를 하며 편지를 쓰고 있어요. 제가 다친 건 아니고, 남자친구가 포항에 왔다가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어쩌다 병원 데이트를 하고 있답니다.
물리치료실에서 대기를 하는 보호자들 가운데 홀로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꺼내 들고 글을 쓰는 저의 모습이 참 웃기지만, 꾸역꾸역 글을 쓰고 있어요.
이번 주 합평 모임은 여러모로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어요. 서로의 글을 통해서 마음을 주고받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곱씹어보는 시간이었어요. ‘감응’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에는 ‘감응의 글쓰기’라는 말이 나와요. 감응하는 것은 기억과도 같이 하나의 능력과도 같은 일이며,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반응하고 글로써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죠. 은유 작가의 글쓰기 철학은 끊임없이 타인과 세상에 감응하며 쓰는 ‘감응의 글쓰기’를 강조하고 있어요.
저 또한 끊임없이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감응하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글을 쓰는 듯해요. 글을 쓸 때만큼 고요해지는 시간이 없답니다.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또 세상을 돌아보기도 해요. 글을 쓰는 것은 단순히 홀로 이뤄지는 행위가 아닌 듯합니다. 누군가가 있어야, 또 이야기가 있어야 글을 쓰기에 작가는 끊임없이 감응하며 나아가야 하는 거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나은 님과 함께 감응하는 글쓰기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해요. 그것도 아주 세밀하게, 모든 감각들을 반응하며 살아가는 서로의 모습들이 위로가 된답니다. 나은 님의 소설 <위선자의 마을> 또한 감응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현시대를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고찰했던 부분들이 소설 속에서 등장하죠. 이번 화에서는 ‘돌봄청’이라는 부분이 가장 눈에 들어왔는데요. 돌봄에 관해서 많이 생각해 보았어요. ‘돌봄’이라 - 지금 우리는 서로를 돌보며 나아가고 있을까요? 앞으로만 나아가기 바쁜 사회 속에서 어쩌면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감각을 잊으며 살아가는 듯해요. 그 속에서 내가 느끼는 모든 아픔과 고통은 한 켠으로 미뤄둔 채 ‘그저 살아가기’ 바쁜 삶의 연속이죠.
어쩌면 나은 님은 서로를 환대하고 돌보는 공동체를 원하는 마음속에서 나온 ‘위선자의 마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아요.
나은 님의 소설의 세계가 확장될수록, 또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얼마나 나은 님께서 고민하고 소설의 세계를 창조하셨을지가 궁금해요. 아직 제가 써보지 못한 소설의 세계는 또 얼마나 다채로울까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드는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쓰고, 고민하는 거 같아요.
감응의 글쓰기를 위해서,
감응하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기꺼이 오늘도 쓰며 나아가는 우리를 응원하며
편지를 마무리해요.
감사합니다.
시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