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무기를 만들 수 있을까요 ? | 나은

by 삶예글방

시원님,



어젯 밤에는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과 중동의 여러 국가들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찾아보다가, 미국이 한국에게 참전을 요구했다는 속보를 봤어요. 이렇게 가만히 지내기만 해도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엄청난 기술과 똑똑한 머리와 지식을 갖고는, 우리는 도대체 왜 이렇게 서로를 해치고 억압하며 타인의 것을 탐하거나 무시하는 것일까- 하는 답답함에 목이 메였어요. 무거운 마음 때문인지 근 몇년만에 가장 심한 두통에 괴로워하다 겨우 잠에 들었어요.


그리고는 밤새 꿈을 꿨어요. 핑크색으로 된 광택있는 젤리같은 테이프를 개발하는 꿈이었어요.

그 테이프는 춥거나 외로운 사람을 모두 감싸주고, 터진 곳을 여며주고 이어주고 붙여줘요.

다쳐서 아픈 곳에 덮어두면 상처가 회복 되지요. 저는 신이나서 그 핑크 테이프를 이고 다니며 꿈에서 다친 아이의 다리에도 감아주고, 자꾸만 물건을 쏟으며 길을 건너는 할머니의 봇짐에도 붙여주었어요. 추워 하는 고양이에게 망토처럼 덮어주기도 하고요.


끔찍한 첨단의 살상 무기 대신 요상하지만 부드럽고 단단하게 돌보는 사랑의 무기를 개발할 수 있을까. 잠에서 깨자마자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어두운 상황에만 집중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우리의 삶에서

감각하는 자의, 감응하는 자의 특권으로 사랑의 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어쩐지 꿈은 꿈일 뿐인건지, 이른 아침에 눈을 떠 생각을 곰곰히 해보려는데 - 자신이 없습니다.

스스로부터도 폭력성이 가득한 사람이란 걸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내 안의 날카로운 무기가 많아서, 스스로 따갑고 지칠때가 많아요. 누구도 비난하지 않지만, 지켜보지 않지만 잘 알고 있는 마음의 일들이죠. 어쩌면 그저 내가 가진 힘이 아직 부족해서 이정도로만 드러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에겐 영원히 권력이나 큰 힘 같은건 안왔으면 좋겠어요. 제 몸 하나 통제하기도, 제 감정 하나 통제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무거운 마음을 품고 시작했던 아침의 삶예글방 합평 모임 때, 시원 님과 연결되는 감각에 놀라고, 위로와 즐거움을 모두 받았어요.


우선 이번 주 시원 님의 시선집 글을 읽으며 마음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보게 되었어요. 시원 님께서 ‘모퉁이의 노래’를 불러주어서, 제 아쳅토 방에 자리잡고 있는 수많은 모퉁이들을 다시 발견했거든요. 저는 그동안 좀 잊고 있었어요. 이렇게 도처에 사랑으로 생을 용기내어 살아간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어떤 사랑의 무기는, 만들기 시작하는 이의 생에 완성되지 않다가 -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다른 누군가가 이어받아 완성하기도 한다는 것을요. 혹은 완성해두었지만 어디에도 쓰이지 못하다가 - 나중에야 필요한 곳에 닿아 오롯이 쓰이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미련하게도, 또 위선적이게도 다시 시작해보려는 마음을 먹었답니다.


그리고 제가 드디어 미루고 미루던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했을 때 시원 님도 지금 한나 아렌트의 「 전체주의의 기원 」 을 읽고 있다고 하셔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신기했구요.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는데 같은 시점에 같은 철학자의 책을 살펴보며 둘 다 똑같이 시작부터 끙끙대고 있다는 것까지 비슷해서 반갑고 즐거웠답니다. 제가 합평 끝나고 읽은 한나 아렌트의 「 인간의 조건 」 의 와닿았던 문장들을 몇 가지 남겨 봅니다.



과학자들이 100년 안에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미래 인간은 이미 주어진 대로의 인간실존에 대한 반항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이 미래 인간은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진(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온 이 공짜 선물을 자신이 만든 것으로 바꾸고자 할 것이다. 우리가 이런 교환을 실행할 능력이 없다고 의심할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능력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연 과학과 기술의 새로운 지식을 이런 목적에 사용하기를 원하는가 하는 문제다.


그러나 지구에 묶인 피조물이지만 마치 우주의 거주자처럼 행동하기 시작한 우리 인간들에게도 행하기는 하지만 결코 이해할 수는 없는, 다시 말해 사유하면서 그에 대해 진술할 수는 없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사고의 물질적・물리적 조건을 구성하는 두뇌가 우리가 행하는 것을 쫓아가지 못하고 그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의 생각과 말을 대신해줄 기계가 필요해지는 상황과 유사하다. 지식(근대적 의미에서의 방법론적 노하우)과 사유가 영원히 결별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우리는 무기력한 노예가 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만든 기계의 노예는 아니겠지만 우리 자신의 방법론적 지식의 노예가 될 것이다. 즉 그 기술이 얼마나 살인적이든 상관없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모든 기계 장치의 손아귀에 내맡겨진 생각 없는 피조물이 될 것이다.


사유하지 않음, 즉 경솔하고 무분별하며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거나 아니면 하찮고 공허한 ‘진리들’을 자기만족을 위해 되풀이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뚜렷한 특징처럼 보인다. 여기서 나의 제안은 단순하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참, 그리고 시원 님께서 산티아고 여행기를 다시 퇴고를 거치며 찬찬히 한 편씩 다시 써서 연재해보시기로 했다고 말씀 주셨을 때, 무지 놀랐어요. 책으로 만드셨을 때, 읽어보고 정말 생동하는 날것의 감정과 일화들에 감화되며 읽었었거든요. 과연 그 생생하던 당시의 기록을 퇴고할 게 있을까? 생각도 들었구요. 그런데 프롤로그와 1부 올려두신 걸 읽어보니 정말 깜짝 놀랐어요. 처음 책으로 읽었을때보다 훨씬 더 세밀하게 고민하며 추가로 생각나는 장면들을 넣으신다고 하셨잖아요. 신기하게도 읽으면서 이야기가 확장되는 기분을 느꼈거든요. 아 - 그래서 계속 다시 써야 한다고 했구나. 전에 하정 작가님이 제가 처음으로 아쳅토에 관해 에세이를 쓰고 책으로 펴냈을 때, 계속 다시 써보고 조금씩 고쳐가며 쓰고 다시 내고 또 써나가면 된다고 해주신 당부와 조언이 떠올랐어요.



밤에는 조금은 긴 산책을 하며 하루를, 한 주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흐리지만 걷기 참 좋은 날이었던 것 같아요. 시원 님도 하루, 또 이번 한 주 잘 보내셨길 바라요.










나은 작가소개 최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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