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vs 아니오

침묵은 금이요, 수행의 길이다

by 삶예글방


버스 기사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


‘승객과 3마디 이상 말을 섞지 말라’

처음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지만 이내 깨달았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출발 대기 전 앞문을 열어두면 보통 물어보는 게 “기사님, 이거 어디 어디 가요?”라는 질문이다. 아니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럼 몇 번 타야 거기 가요?” 그래, 여기까지도 몇 번 버스라고 대답한다. 또 질문이 이어진다. “그 버스는 어디에서 타야 해요?” 기다리던 정류장이라면 다행이지만 길 건너라던지 다른 쪽이라면 또 설명을 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이쪽 편이에요? 저쪽 편이에요?” 1분 1초가 아쉬운 기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간 마음속에서 나쁜 감정이 확 일어난다.


물론 대답해 주는 것도 기사의 일이지만 대답하느라 저 앞에 신호를 놓치면 내 쉬는 시간이 1, 2분은 금세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에 3마디 이상의 말을 만들지 않기 위해 단답형의 대답을 하게 되고 저런 말이 나온 것 같다. 나도 별로 다를 바 없다. 일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승객이 탈 때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승객이 내릴 때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네” 와 “아니요”다. 그리고 똑같이 질문을 받는다. 이거 어디 어디 가요? 안 가요?라고 말이다.


처음에는 질문을 받고 어디서 타야 하는지 어떻게 가는지 검색해 가면서 대답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나조차 세종 지리를 잘 알지 못해서 무슨 마을 몇 단지 가냐고 물어보면 찾아봐야만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을 건네면 돌아오는 것은 다른 질문에 꼬리를 이은 질문이다. 대답하다가 출발시간에 늦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대답이 매우 간결해졌다.


“네” 아니면 “아니오”


현재 내가 운행하고 있는 노선은 B2 와 B4 다. 기존에 다니던 B2 노선은 한때 일평균 승객수가 1만 명을 넘을 정도로 이용하는 승객이 많다. 승객수가 많은 만큼 배차간격도 촘촘한 편이다. B2를 타려는 승객이 항상 줄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B4 노선은 세종시의 금강 이남 지역에서 오송역을 가기 위해 환승하던 번거로움을 해소하고자 개통된 노선이다. 상대적으로 이용하는 승객수가 적어서 배차간격이 긴 편이다.


B4 노선이 새로 개통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B2를 타야 하는 승객의 질문이 부쩍 늘었다. 보통 오송역에서 출발할 때 질문이 많은데, 오송역 버스 환승 센터는 승차 홈이 9개나 되고 승차홈마다 정차하는 버스가 다 다르다. 우리 회사에 배정된 승차 홈은 1개인데 거기에 정차하는 노선은 B2, B4, B6 이렇게 3개나 된다. 또한 B2 노선과 B4 노선은 세종시를 하늘에서 바라볼 때 서쪽으로 도는지 동쪽으로 도는지의 차이뿐이다. 기점도 종점도 모두 같다. 게다가 버스의 생김새도 같아서 번호를 안 보면 헷갈릴 수도 있다. 버스 환승 센터를 처음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헷갈릴 수도 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버스에 표시되는 노선번호 자체가 다른데 한둘도 아니고 출발할 때마다 서너 명은 넘게 물어보니 슬슬 짜증이 나고 답답했다. 나는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한다.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초록창 선생님(N사)과 외국인 선생님(G사)께 여쭤보고 답을 찾아낸다. 그런 나에게 버스 전면과 측면의 전광판에 가는 곳과 경유지가 나오고 잠깐의 검색이면 알 수 있는 노선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물어보는지가 궁금해 미칠 지경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나는 짜증과 답답함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검색을 해보기로 했다. 우선 인간의 본능과 감정의 저 밑바닥부터 찾아봤다. 잘못 타면 어쩌냐는 불안감 때문일 테다. 불안이란 느끼는 순간부터 오로지 해소만을 위해 태어난 감정이다. 그러니 “어디 가나요?”라고 물어보면 기사가 대답을 해주니 바로 해소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감정을 느끼기 전에 전광판을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면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낄 필요조차 없다는 사실이 왜 물어보는지에 대한 답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문맹률 최하위 국가다.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세계에서 알아주는 스마트폰 보급률 최상위 국가다. 전체 국민의 숫자보다 보급된 스마트폰 숫자가 많다. 물어보기 전에 글자를 읽어보거나 검색을 해보면 충분히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전광판에 노선번호가 항상 나오며 일정 시간마다 바뀌기는 하지만 영어와 작은 글씨로 어딜 지나가는지 종점이 어딘지 쓰여 있다. 요즘은 시골의 마을버스조차 번호만 검색하면 노선도가 나오는 세상이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답을 찾은 질문이 생각났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그렇다. 우리는 전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빨리빨리의 민족이다. 굳이 읽지 않아도 굳이 검색해보지 않아도 기사에게 물어보면 금방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물어보는 건가 싶다가도 다른 이유가 더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럴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겠다 싶어서 정신건강 전문의에게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물어보는 심리가 무엇인지 왜 그런 건지에 관해 물어보았다.


답은 아주 간단했다. “이기적이어서 그래요. 누구나 다 자기밖에 모르니까요.”

순간 머리가 띵해지면서 무릎을 쳤다. 이거다. 이게 답이었다.


읽는 것도 검색하는 것도 귀찮은 이기적인 나는 그냥 물어보고 답을 들으련다. 바로 이 심리였다. 답을 들은 뒤로는 일하면서 똑같은 질문을 받아도 뭔가 마음이 편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대답하는 나도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어차피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나의 업무인데 그게 귀찮아서 대답을 간단하게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묻고 답하는 작은 일에서도 생각하고 반성하며 인간을 배워간다.

나에게도 물어본다. 나는 이기적인가? 그렇다.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기적이라는 것이 좋다 나쁘다를 말하기보다 이기적인 것을 인정하고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쩌면 앞으로 살아가며 매 순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이기적인 가요?”






여담 ; 덧붙이는 이야기


이 글을 작성하고 나서 한 커뮤니티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진은 “계양역 가나요? 네”라고 요금함에 써 붙여놓은 것이다. 물어보는 승객이 많으니 써 붙여놨을 것이다. 그때였다. 번뜩하며 나도 저걸 응용해서 붙여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B4 노선이 지나지 않는 정류장을 나열하며 물음표를 붙이고 아래쪽에 ‘아니오’라는 말에 진지함을 담아 궁서체로 크게 출력했다. 처음엔 붙여놓은 걸 읽지도 않고 계속 물어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 써 붙인 걸 보고 돌아서기 시작했다. 개통한 지 3년이 다 되어 가는 노선의 홍보를 이제 와서 내가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뭐 어쨌든 말 한마디 덜하고 수고를 덜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도 참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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