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하다, 평균을
내가 왜 저들이 가는 방향대로 가야 하지?
남들 하는 것만큼 하라고 들을 때마다 진력이 났다. 정말로.
'남들과 비슷하게 하라는 것' 그 자체를 극도로 거부하는 특징을 타고난 것임을 지금은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타고난 것임을 알기 이전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났다. 남들이 가는 길로 가면 안전해 보일 수 있겠지만,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방향도 잡지 못하고 군중에 휩쓸려 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편안할 수 있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는 반드시 좋지 않다는 결론 ['나는 남들 하는 만큼 하려고 최선을 다 했는데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이냐?'라고 후회하는 모습]을 많이 지켜봤다. 그래서 현실을 따르라는 말을 들을 때도 ‘평균적인 인간이 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현실과 더 많이 싸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 과정의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칸 아카데미에서 초등과정부터 고등과정까지 다시 공부하겠다고 영상을 하나하나 들은 것
2) 피아노 테크닉을 제대로 알고 싶다고 7~8년 간 훈련한 것
3) 모르는 분야에 대한 독서를 통해 내가 모르는 분야를 하나하나씩 알아가려고 한 것
4) 가능하면 다양한 종류의 글을 써 보고, 브런치북을 출판을 도전하는 것.
5)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한테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앎을 배우려고 한 점.
거기다 이런 느낌도 있었다.
‘내가 만일 남들처럼 산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죽은 목숨이 될 것이고, 좀비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그 꼴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결국에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거나, 극찬을 받는 것들의 특징을 보면 ‘남다른 것을 추구하고 독창성을 만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에 있어서 엄청나게 시간이 오래 걸린다. 10년은 장난 수준이고 최소 15년~20년 이상 걸린다. 또 환경, 자신의 수준, 태도, 노력들도 고려해야 하므로 변수가 더 많아져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더 힘들다. 하지만 단련의 시간을 제대로 견뎌내면 그 가치는 더 빛난다.
펜듈럼도 평균이란 기준을 활용해 사람들에게 ‘적당히 해라. 그러면 내가 널 편안히 해줄게!’라고 유혹한다. 그리고 펜듈럼에 걸리게 만들어 노예로 부린다. 그리고 에너지를 최대한 빼앗고, 마지막 순간에 버린다. 죽음의 순간에. 그리고 사람들은 후회하고 죽음을 겁낸다. 이게 나한테 일어난다고 생각해보면 오금이 떨린다. 그래서 더욱 평균을 따를 수가 없다.
20대에 그토록 평균을 거부하면서 살더니, 30대 와서는 그나마 숨통이 트여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좀비와 같은 존재가 되지 않게 그렇게 싸운 것이 지금 내 삶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느낄 수 있게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