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 한마디, 한 모금
쓰기 위해 쓰는 휴가는 독립출판물을 만들기 위해 떠난 집필 여행의 기록입니다. [J]와 [ㅈ]가 함께 쓰는 글이라, 같은 제목의 글이 두 편씩 업로드됩니다. 에피소드 제목은 그날을 가장 잘 담은 노래이니 들으며 읽으시길 권합니다. - ㅈ
“같이 볼링 치러 갈래?”
단 한마디였다. 30분 넘게 우리 사이를 채우고 있던 팽팽함이 말 한마디에 풀어졌다. 5초 전까지 집에 가겠다며 축 처져있던 J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고, 나도 웃었다. 진작에 이렇게 말했으면 멀리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준비로 분주한 청계광장을 지나칠 때만 하더라도 이런 상황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기 위해 분주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청계천을 따라 쭈욱 늘어선 형형색색의 조명은 추위를 잊게 할 만큼 밝고 따듯했지만, 우리가 나누고 있던 시답잖은 이야기를 멈추게 할 만큼 밝지 않았고, 마주 잡은 우리 손바닥을 놓게 할 만큼 따듯하지도 못했다.
한참을 헤매 찾아간 곳은 3층짜리 조용한 카페였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지만, 꾸역꾸역 3층에 자리를 잡았다. 한참 동안 앉아서 글을 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오래 먹을 요량으로 커피와 밀크티를 섞은 이름 모를 진한 음료를 시켰다. 같은 생각이었는지 J도 진한 음료를 시켰다.
사단은, 그 이름 모를 음료가 식기도 전에 일어났다. 우리는 같은 단어로 말하고 있었지만, 각자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감정을 팽팽하게 당기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그런 게 숨겨질 리 없다. 서운함에 서운함이 겹치고, 서운해하는 걸 보고 서운하고, 서운해하는 걸 알아주지 않아 서운해했다.
결국 둘 다 심각한 표정이 되어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며 J가 집에 가겠다고 했다.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천천히 이야기했음 금방 끝냈을 일을 키운 나는, 다급해졌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고민 끝에,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같이 볼링 치러 갈래?"
단 한마디였다. 30분 넘게 우리 사이를 채우고 있던 팽팽함이 말 한마디에 풀어졌다. 5초 전까지 집에 가겠다며 축 처져있던 J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고, 나도 웃었다. 진작에 이렇게 말했으면 멀리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미지근한 음료를 절반이 넘게 남기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볼링장을 두 곳이나 찾아갔으나 볼링은 칠 수 없었다. 카페 가까이 있던 곳은 태릉선수촌을 방불케 하는 프로 볼러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고, 숙소 까까이 있던 곳은 락페를 방불케 하는 프로 알콜러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망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한 계획은, 볼링장 앞에서 내가 J의 맥북을 떨어트리는 화려한 피날레로 막을 내렸다.
글 한 줄 쓰지 않았고 볼링공 하나 굴리지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마주 잡은 J의 손이 변함없이 따듯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씻고 잘 준비를 끝낸 새벽 1시. 나는 뜬금없이 J에게 밀크티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어딘가 찝찝한 하루를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밀크티? 지금?”
별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J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홍차 포장을 뜯었다. 씁쓸한 향기가 났다. 갑자기 왠? 하는 표정과 달리 J의 손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냄비에 홍차잎과 우유를 끓여 일본식 밀크티를 만들겠다고 했다. 뚝딱. 5분 만에 컵에 밀크티가 담겼다.
밀크티를 만들어준 건 처음이었다. J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컵을 건네주었다. 악명 높은(?) J의 밀크티 이야기를 익히 들어온 나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호륵.
유난히 씁쓸한 맛이 많이 났던 J의 일본식 밀크티는 따듯하고, 맛있었다.
나의 말들은 자꾸 줄거나
또 다시 늘어나 마음속에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