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호라는 유일무이한 기록자의 기록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 지승호
오픈하우스. 2016. 248p. 15,000
소설가 정유정은 “‘여기 시체가 있다’는 직무유기예요. 작가는 독자에게 시체를 안겨줘야 해요. 무게, 질감, 냄새, 시체의 모든 것을”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소설과 인터뷰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저는 그런 방식을 취하고 싶습니다.
축구에는 메시존이라는 게 있다. 리오넬 메시가 찼다 하면 골이 들어가는 지역에 붙여진 이름인데, 정확하게는 패널티 박스 오른쪽 외각 부근이다. 물론 메시는 메시니까 평소에도 잘 하지만, 메시존에서 메시는, 존나, 잘한다. 부드럽게 툭- 발을 가져다 대면, 공은 골대로 빨려 들어가고, 골키퍼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자빠진다.
패널티 박스 오른쪽 외곽이 메시존이라면, 인터뷰라는 외곽 불모지는 지승호존이다. 인터뷰라는 영역에 있어서 지승호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인터뷰만으로 45권의 단행본을 냈고, 앞으로 더 많은 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근거를 갈음하고 넘어가겠다.
인터뷰에 대한 책을, 지승호가 썼기에 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1. 지승호는 인터뷰어로서 자신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어느 위치에 있는 가를 여러 사람의 입을 빌어 천천히 설명한다. 설득력은 갖추되 재수 없지 않게. 예컨대 이런 식이다.
한국에서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약력이나 훑어보고 찾아가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눈 다음, 그 삶과 정신에 대해 파악한 양 구는 일인 듯하다. 물론 그건 인터뷰라는 노동을 둘러싼 추레한 환경 때문이다. 지승호는 그런 환경과는 아랑곳없이 인터뷰어의 기본을 지킨다. 그는 인터뷰이가 감탄할 만큼 치밀하게 준비하고, 또 거듭한다. 아직 그의 노동엔 즉각적인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개척자적인 인터뷰어인 셈이다. (김규향, p.92)
이전에 장시간 인터뷰를 몇 번 했어요. 지승호 씨는 신뢰로 열려 있는 인터뷰어죠. '저 양반이 사생활을 물어보는 이유는 어떤 필요에 의해서다' 그런 믿음이 있으니까 편하게 이야기했고, '저 인터뷰어가 나에게 와서 쥐어짜가려고 한다' 이런 경우는 긴장이 되니까 싫은 것이고. 대화잖아요. 인터뷰는. (신해철, p.239)
2. 어느 분야건 일가견을 이룬 사람이라면 어떠한 형식으로든 자신의 족적을 남겨야 하는 사회적 책무가 있는 거 아닌가, 라는 건방진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다. 값진 경험은 기록되어 쌓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서 지승호 정도의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라면 기록을 남겼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아 마땅하다.
3. 나는 다만 그 시도가 좀 더 정교했더라면 좋았겠다, 라는 건방진 생각 또한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인터뷰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고 있음에도 어느 것 하나 피부로 와 닿게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번에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독특한 질문법과 '바보 같은 질문입니다만'이라고 말하는 겸손을 알았다는 것 외에 딱히 도움받았다고 말하기 힘들면서도 도움은 되는 묘한 느낌이랄까.
4. 그 이유는 아마도 지승호의 책을 펼쳐들며 기대했던 것들, 예컨대 인터뷰 준비를 충실하게 한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얼마만큼의 자료를 보는지, 그 결과 어떤 질문지가 만들어졌고 실제로 인터뷰에서 어떤 질문을 했는지, 잘 했다고 생각한 질문과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한 것은 어떤 것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미묘한 감정싸움의 경험과 해결책은 무엇인지, 인터뷰가 끝난 후 인터뷰이와 조절은 얼마나 어떻게 하는지, 녹취와 지면은 어느 정도로 차이가 나는지 등 그의 경험이 녹아든 부분이 부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5. 내밀한 경험의 빈 공간은 갖가지 명언이 차지하고 있다. 정유정의 소설가의 태도, 표창원의 심리 기술 등을 인터뷰에 접목시켜 설득해 나가는 방식은 세련되고 설득력 있었지만, 이 책을 펼치며 내가 기대했던 바는 아니다. 어쩌면 이 유일무이한 기록자의 내밀한 경험은 스스로 인용했듯 '발각되기를 기다리는 가벼운 비밀'이어서 또 다른 기록자의 인터뷰로만 열릴 수 있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