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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허생 Dec 01. 2016

아직도 손바닥을 보고 있을 누나에게, 「금각사」

[좁은 서재]

햄토리가 살 것 같은 작은 원룸에 몸을 욱여넣고 살고 있다. 가전과 가구에 대한 욕심은 일찌감치 버렸음에도 책 욕심은 버리지 못했다. 한 권 한 권 사 모은 책이 발로 차일 지경에 이르러, 작은 책꽂이를 샀다. 기껏해야 20권 남짓의 책을 꽂을 수 있는 내 서재다.

작다기보다 좁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 서재에는, 내가 정말 아끼는 책들만 꽂혀 있다. 이것저것 다 꽂아 둘 여력이 없어 군더더기 없이 내 취향을 듬뿍 반영한 녀석들만 모았다. 고로 이 서재는 아주 편향되고 편협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손바닥을 보고 있을 누나에게, <금각사>


실은 불안합니다. 이 책을 너댓명에게 추천했었는데, 끝까지 읽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거든요. 지금까지는 전패한 셈이죠. 책 추천을 하겠다고 해놓고 부끄러운 과거부터 까발리다니, 시작부터 자폭인가 싶으시죠? 하지만 저는 이 냉혹한 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럼에도’ 이 책을 또 추천하고 싶거든요.


아끼고 또 아끼는 이 소설을 읽다가 중도 하차를 선언한 지인들을 원망하지는 않아요. 현학적이고 괴랄스러운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책장을 절로 덮고 싶은 게 사실이니까요. 저도 고2병에 걸려 이해 안 되는 책만 골라 읽던 시절에 이 책을 만났기에 망정이지, 오늘 처음 읽었으면 ‘미친놈 같아..’라며 던져버렸을지도 몰라요.


‘그럼에도’(어쩐지 이 표현이 자꾸 등장한다) 이 괴랄스러운 소설 <금각사>를 추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주인공의 심리와 상황을 묘사하는 문체가 기깔나기 때문이에요. ‘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알게 된 사실인데, <금각사>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문체는 글깨나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했다고 해요. 필사를 많이 하기도 했고요. 신경숙 작가가 그대로 가져다 쓴 것도 그런 이유겠죠(본인은 끝까지 아니라고 하지만요).


아, 저는 누나에게 조금 다른 이유로 이 책을 추천할까 해요. 이유는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선 <금각사>의 한 부분을 읽어볼게요.

 

지금도 그 손바닥의 기억은 살아 있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손바닥.
등뒤에서 넘어와, 내가 보고 있던 지옥을 순식간에 그 눈으로부터 뒤덮어 가려 버린 손바닥. 타계의 손바닥.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에요. 아버지가 손바닥으로 주인공의 눈을 가려주는 장면을 묘사한 거죠. 주인공이 보고 있던 ‘지옥’은 어머니의 불륜 현장이에요. 미시마의 섬세한, 아니 예민하다고 하는 게 나을 거 같네요. 특유의 예민한 묘사가 잘 드러나죠? 


주인공 미조구치는 아버지를 이어 승려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15살 소년이에요. 소년의 눈앞에 펼쳐진 엄마의 불륜 현장을 말 그대로 지옥과 같았겠죠. 그에게 아버지의 ‘크고 따듯한 손바닥’은 구원이자, 유일한 도피처였을 거예요. 그는 그대로 ‘눈꺼풀이 눈부신 햇살을 통과시킬 때’까지 눈을 꼭 감고 길고 긴 밤을 보냈습니다.

이후 주인공은 아버지의 손바닥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따듯한 손바닥’이 현실이 아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한겨울 추위를 잊게 해주는 전기장판에서 일어나기도 쉽지 않은데, 지옥을 가려준 손바닥이니 오죽하겠습니까. 견딜 수 없이 어려운 일 앞에서는 누구나 도피처를 찾기 마련이죠.


어쩐지, 이 편지가 생각나네요.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기억나시죠? 육영수 여사께서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태민 목사가 누나에게 보낸 편지. 당시 누나께서는 <금각사>의 주인공이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으셨겠죠. 정말로 지옥이라 할 정도로요. 그 무섭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렇게 다독여주는 사람이 있다니, 의지가 됐을 겁니다. 아버지의 크고 따듯한 손바닥 아래에서 밤새 눈을 꼭 감고 있던 주인공 처럼요.


아무튼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소설 제목이 <금각사>인 만큼 금각사가 아주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되는데요, 소설의 첫 문장에서부터 ‘금각사는 의미심장해!!’라고 티를 팍팍 내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자주 금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설가들이 첫 문장에 가장 신경을 쓴다고 하지요. 그 중요한 첫 문장에 아버지와 금각이 등장합니다. 게다가 ‘자주’ 이야기를 했다고요. 이 정도면 금각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겠죠.


금각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얼쑤, 아버지가 주인공에게 뱉는 이 대사는 한 술 더 뜹니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금각사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고스란히 주인공에게 각인됩니다. 즉, 금각사는 아버지의 세계이자 그늘이고, 크고 따듯한 아버지의 손바닥인 셈이죠. 많은 이들이 금각을 어머니의 상징으로 해석하지만, 저는 아버지의 영향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해 금각을 아버지의 상징으로 정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아버지의 손바닥이 주인공을 지옥에서 꺼내줬고, 아버지가 금각의 아름다움을 알려줬는데 뭐가 문제냐 싶겠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아버지로 인해 세계와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 자리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주인공은 점차 내면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스스로는 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손바닥의 속박은 해제’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손바닥이 아버지에 의해 각인된 금각으로 다시 나타났을 뿐이죠. 그가 여자와 관계하려 할 때마다 금각이 눈앞에 아른거려 실패한다는 장면에서 그러한 점이 잘 드러납니다.


어라, 현실과 주인공을 가로막는 존재가 아버지의 손바닥에서 금각으로 옮겨가는 것. 누나를 따듯하게 품어주는 존재가 최태민에서 최순실로 옮겨가는 것. 이거 묘하게 맞물리네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금각사>가 어찌 되냐는 거겠죠?


신통하신, 아니 현명하신 누나께서는 이미 눈치챘을 지도 모르겠지만, 주인공은 결국 금각을 극복해내고야 맙니다. 어떻게요? 그 실마리는 소설 속 갑자기 등장하는 ‘남천참묘’라는 선불교 일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조금 길지만 재밌는 이야기이니 그대로 인용해 볼게요.


한적한 산 속 절간에 한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나타났다. 신기한 느낌에 모두가 달려들어 이것을 사로잡았으나 그만 동서 양당의 다툼이 벌어졌다. 양당은 서로가 이 새끼 고양이를 자기네가 키우겠다고 다툰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있던 남천 스님은 당장에 새끼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고 풀 베는 낫을 들이대며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들이 올바른 해결책을 구하면 살려 줄 것이고, 구하지 못하면 즉각 베어 버리겠다.” 중들은 대답이 없었다. 남천 스님은 새끼 고양이를 베어 버렸다.


남천은 중들이 싸우자 갈등의 근원이 된 고양이를 제거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합니다. 단순하고 명쾌하죠. 다른 이들도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방법을 행하지는 않죠. 남천이 위대함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귀여운 새끼 고양이를 과감하게 제거할 수 있다는 것. 욕심을, 불행의 근원을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 말입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주인공은 금각사를 불태우기로 결심합니다.


드디어 결심의 그 날이 찾아옵니다. 의외로 주인공은 당황하거나 들뜨지 않습니다. 목표가 명확해지니 마음이 평안해진 걸까요. 정해진 일을 해내듯, 차곡차곡 방화를 준비하죠. 성냥에 불을 붙이는 그 순간마저 침착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렇게 주인공은 자신을 평생 괴롭히던 금각, 즉 아버지의 손바닥을 제거합니다. 자신의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요.


해서 저는 <금각사>를 한 인간이 스스로 서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따듯한 손바닥을 치워버리고 예쁜 고양이를 죽일 수 있어야 세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고, 자기 삶을 살 수 있다고요. 물론 그 과정은 힘겹고 어려울 테지만, 내 삶을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겠지요.


언젠가는 누나가 그 일을 해낼 수 있기를 기원해 볼게요. 아래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담담하게요.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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