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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원PD Nov 03. 2020

가을, 사과가 익어가는 계절

이 계절마다 반복되는 애플의 노예

해마다 이 계절이면 반복되는 애플 노예 모드, 아이폰12와 함께 올해는 크게 지름이 오고 말았다. 

애써 3년이나 쓴 폰을 칭찬하며 구매를 결심한 아이폰12pro, 

출시 첫날 받기 위해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예약 오픈 시점에 맞춰 애플 공홈 접속!

돈 다 주고 사는데 줄 쓴 꼴이다. 그럼에도 빠르게 물건을 받음에 으쓱, 알아봐 주는 이들도 있다.


노예 모드가 아닌 시간이 꽤 길었다고 생각했지만, 페이스북은 나에게 각성을 안겨주었다.

지난해 가을의 사과 공장은 나에게 결코 자비롭지 않았고 난 역시나 노예처럼 당했다.

꽤 오랜 기간 쓴 것 같았는데 이제 쓴 지 1년 된 애플워치가 그 주인공, 2019년 10월 구입이더라.

생애 두 번째 애플워치를 구입할 당시 핑계는 운동의 조력자라는 구실, -물론 매우 유용하게 운동에 쓰고 있다.-

워치는 꽤 오랜 시간 쓸 것이라 믿었지만, -그리고 그러고 있습니다만.- 신모델은 이어지고 있다.

뭐, 올 가을 사과 공장에서는 폰을 구입하느라 크게 기웃거리지 않고 넘어가긴 했다만, 얼마나 이어질까?

빠르면 내년 가을, 늦어도 2022년 가을쯤에는 아마 사과 공장의 워치 신상품을 구입해 또 자랑질을 할 터.

자랑거리가 되는지도 의심스럽다. 바꿔 생각하면 이런 지름은 한심스러운 어른의 모습이 아닐는지...


그럼에도. 아이폰12 구매 이후, 삶의 질은 분명 달라졌다. 정확하게는 나아졌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마다 "내 폰이 가장 오래된 거야."라는 투덜이 사라졌고, 사진은 더 좋아졌다.

그립감부터 달라진 이번 모델, 들고 다니면 확 티가 난다. 물론, 기분이 가장 좋아진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모양이 다른 버전을 구입하기 위해 기다리다 보니 2년쯤 더 늘어진 것 아니냐는 누군가의 지적에 뜨끔했던,

가을, 사과 공장을 향한 노예 모드의 지름 사건. 스스로 살짝 반성하지만 얼굴은 웃고 있는 이 아이러니.

한때는 그런 나 자신에게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고작, 폰이 뭐라고 그렇게 집착하고 좋아라 하는가.

물욕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와 같은 후회와 한탄, 그리고 반성들.

사는 순간의 들뜸조차 스스로 자책했던 시절이 있고, 좋아도 좋은 척 못했던 날들이 분명 있었다.

그렇지만, 다 부질없다. 반성에 의해 변화하거나 바뀐 것도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사소한(?) 하나의 지름으로... 물건이 새롭게 함께 함으로... 내 삶이 즐거워진다면,

그건 어쩌면 소비보다 더 큰 행복을 만나는 기회, 아닐까?


가끔씩 재벌과 부자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늘 하던 말,

"돈이 많은 JY는 뭐든 다 가지고 싶은 거 쉽게 가질 수 있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행복할까?

폰을 바꾼다고, 차를 바꾼다고, 그가 우리처럼 행복감을 느낄까? 어쩌면 우린 더 쉽게 행복한 거야."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불쌍한 월급쟁이의 한탄 일지는 몰라도... 어쩌겠는가, 내 삶이 이러한 것을.

수확의 계절, 사과 덕에 행복한 내가 좋다. 이 시간들의 행복감이 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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