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길바닥에 자주 앉아있었던 나는
길에 자의든 타의든 나 앉은 사람들을 보면 단순히 '춥겠다' '덥겠다' '배고프겠다'를 넘어선 조금은 구체적이고 사적인 감정이 올라온다.
오늘 아침엔 핸드폰을 보다가 작년 이맘때 써 놓은 일기를 우연히 발견했다.
길 위의 사람들에 관한 얘기다.
일기체라서 말투가 버릇이 없고 글이 엉망임에도 왠지 모르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 본다.
오늘은 오랜만에 치폴레가 먹고싶어서 점심도 안싸오고 해서 치폴레 사러가는데 어떤 키 큰 흑인 아저씨가 하우아유 하길래 나는 잘산다고 니는 잘 사나 했더니 갑자기 치즈버거를 사줄 수 있냐고 하는거야.
근데 딱 느낌이 정말 배가 고파보여 당연하지 사줄께 했어. 근데 치폴레는 어때? 그랬는데 자기는 치즈버거가 좋데. 치폴레는 차가워서 노노래. 그래서 알았다 파이브가이즈 가자 그랬어.
가서 감튀도 먹을래? 그랬더니 그러겠데. 그래서 감튀, 치즈버거, 콜라 사줬어.
19달러 나오는거라 세상에... 그래서 아저씨 버거 사주고 나는 걍 회사 돌아와서 탕비실에 있는 컵라면 먹었어. 아저씨 덕에 가벼운 점심먹고 초콜렛맛 프로틴 먹었는데 정신이 더 또렷하고 좋네.
아저씨 밥 사주고 한번 형식적 허그해주고 가는데 등이 축축한거야. 이게 제발 오줌이 아니길 바랬어. 내 손 드러워진거야 씻으면되지만 그 아저씨가 오줌바닥에서 누워자야하는 삶은 아니길 빌었어. 그래도 외양은 그렇게까지 더럽진않았거든...얼굴에 쥐젖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라긴 했지만.
나도 길거리에서 헐벗고 헤매는 느낌을 조금은 알지. 혼자 여행하며 세상외롭고 충만했으니.
회사 근처에 대로가 있어서
노숙자가 종종 보였다.
그 아저씨 말고도 데이지라는 조그만 흑인 여성이 회사 근처에 담요를 끌고 다니며 살았다. 회사 드나들 때 마다 자주 보이길래 마주칠 때면 가끔 안부를 묻곤 했다.
원래 디트로이트 사람인데 신분증을 한번 잃어버리고 재발급받는 과정이 길어지면서 인생이 베베 꼬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살아보니 그게 불가능한 나라가 아니다.
여기 살면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내가 한국에서 당연히 누렸던 행정서비스는 가히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행정서비스가 내 삶의 터전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의미를 지니진 않는다.
그렇게 욕해대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도 나는 체감해 본 적 없는 불편이다.
그럼에도 길거리에 이렇게 사람들이 터전을 잡고 사는 걸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