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성로에서 대구역 쪽으로 걷다 보면 교동시장이 있다.
오징어찌짐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샛골목을 걷다 보면 쪼그려 앉아 삶은 소라 까는 할매들, 구운 납작만두에 떡볶이 국물을 끼얹는 아지매들이 '삶이란 이런 것이다'를 자기만의 움직임으로 시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오리지널한 몸짓에 환장하는 나는 목적 없이 교동시장을 노닐며 많은 영감을 얻곤 했다.
교동시장 지나다니기는 사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삶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분들의 필살기를 피해 다닐 줄 알아야 하는데 내가 체득한 병법은
일단 눈에 힘을 있는 데로 풀고
귀는 있는 데로 연 다음
주변시야(peripheral vision)만 사용해서 면밀히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할매들에게 팔꿈치를 잡혀 무작정 그들의 가게 안으로 떠밀려 들어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렇게 걷다가
아무래도 이 사람의 움직임은
직관이 필요하다 싶으면
풀려있던 눈에 정신을 불어넣고 그분의 눈을 응시하면 된다. 그럼 어느새 내 앞엔 오징어찌짐과 양파간장이 놓여있는 것이다. 돈 주고 떳떳하게 티켓을 구매했으니 이제 마음 놓고 관찰이 가능하다. 용기 내서 말도 걸어본다. 1:1 팬미팅이 따로 없다.
필살기必殺技: 사람을 확실히 죽이는 기술.
가끔 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이런 필살기를 가진 분들을 접하게 된다.
제목만 스윽 봐도 그 글의 중력장에 팔꿈치가 잡혀들어가 죽임을 당하고 나서야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런 글들의 특징을 나름 분석해 보았는데
군더더기 없이
남의 말을 쓰지 않고
개별적인데 보편적이고
시적(詩的)이지 않아서
교동시장 할매들의 움직임을 닮아 있었다.
그녀들의 움직임은 본질적이고 자신의 것이고 그들 자체가 시(詩)라서
시적이지 않다.
한 번은 시적 표현으로 범벅된 톨스토이에 관한 칼럼을 봤는데 눈알을 얼마나 헹궈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내가 시를 좋아하는 반면 시적 표현을 싫어하는 것은 소피스트와 향원과 바리새파를 싫어하는 것에 맥이 닿아있다.
ACCI: 조카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 아찌.
나는 언제 가장 나인가 생각해 보았다.
물론 나의 모든 페르소나가 나지만 조카들과 함께 놀 때의 내 모습이 가장 이완되어 있음을 깨달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서 작가명으로 삼았다.
자신만의 몸짓으로 세상을 수놓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그런 이들은 강하고 아름다운 중력장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사람 약 올리는 말을 잘하고 다녔지만 그가 했던 이 뻔한 말을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Be yourself; everyone else is
already taken.
자신이 되세요. 남들은 이미
남들이 차지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