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새벽

by ACCIGRAPHY






꿈의 막바지엔 대개 풍경이 픽셀화pixelated 되므로 곧 눈을 뜬다는 걸 알 수 있다. 꿈이 깸에 이르면서 점점 뭉쳐지던 픽셀들은 새카만 네모 천장 하나를 만들며 끝을 맺는다.


이때 내 모드는 어릴 적 오락실에서 보글보글을 하다 흔히 보던, 죽고 다시 태어나 약 3초 정도 흐릿하게 돌아다니며 나쁜 놈에게 닿아도 죽지 않던 그 두 세계에 걸쳐있다.


팔을 뻗어 핸드폰을 바라본다.


3:55


정상 컨디션일 때 7시쯤 눈이 떠지므로 아직 몸의 일부가 도쿄나 대구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구나 생각하며 터벅터벅 욕실로 향한다.


미지근한 물을 손에 소복이 담아 얼굴에 비빈다. 씻겨나가기 좋도록 친절히 피부 표면까지 마중 나온 노폐물이 하나도 남지 않고 씻겨져 나간다. 어차피 알 길이 없는 것들에 대해 이왕이면 나 좋은 방향으로 해석한다. 눈을 뜨자마자 세수할수록 더 많은 노폐물이 씻겨나간다는 믿음이 있다.


가끔 어물쩍 데다 세수를 늦게 하는 날은 마중 나왔던 노폐물이 도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이렇듯 어물쩍 대다 보면 인생의 많은 기회들이 날아간다. 기회들을 다 잡을 필요는 없지만 잡힐만하면 그냥 잡아본다. 무리스러우면 놓는다. 어차피 자연스런 흐름을 통해 얻어걸리는 것만 내가 된다. 가끔 내가 나무라면 옹이가 별로 없겠구나 싶다.


수건으로 물기를 꼭꼭 눌러 닦고 수분크림을 바른 후 부엌으로 걸어가 미지근한 물을 한잔 마신다. 곧 다가올 커피로 인한 수분 손실에 내외양면으로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한동안 커피 의존적 아침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적도 있으나 커피가 들어오면 뇌 속의 안개가 사악- 걷히는 이런 시스템을 갖춘 몸이 오히려 놀랍게 느껴지면서 온전히 누리기로 했다. 물 마시면 갈증이 사악- 가시는 것과 같은 거라고 몸에게 최면을 걸었다. 아침에만 한번 벌어지는 이 축제의 여운은 보통 오후 5시를 기점으로 사그라든다.


커피를 다 마시고 건강한 무언가를 입에 넣는다. 요즘은 다시마. 한 조각 깨문 후 잘근잘근 씹으며 미지근한 물을 마신다. 짠맛에서 감칠맛으로, 단단함에서 미끌거림으로 흐르는 질감은 커피로 깨어난 의식을 한층 더 활성화시켜 아침에 창조적 행위를 하기 좋은 상태로 만들어 준다.


커피와 다시마의 은사로 어제 없던 무언가를 만들고 나서 해를 보며 긴 산책을 한다. 원래 오후 산책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리듬에 변화가 생겼다. 이 두 가지를 하고 나면 오전 10시쯤이 되고 그때부터 하는 모든 행동은 덤이다. 창조와 산책은 꼭 해야 하는 일이고 오후에 돈을 벌거나 하는 일은 부수적이다.


그렇다고 내가 돈이 많아서 이러는 건 아니다. 나로 살기에 적절한 부를 유지하며 축적보다는 흐름에 관심을 둔다. 어차피 내 인생은 나에게 호의적이라 별 걱정이 없다. 이는 내 인생엔 순경順境만 있다는 소리는 아니고 그냥 나답게 사는데 필요한 단맛 매운맛 새그라운맛이 골고루 잘 들어있다. 매운맛을 통과할 때도, 아니 그럴 때일수록 더 내 인생은 나를 열렬히 사랑한다.


새벽엔 주로 이러고 논다.


saegraunmat, 3000px X 1000px, Procreate작업, ACCI CALLI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