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하루
오후 5시.
에이미의 검은별에서 해가 뜨는 시간이다. 검은별 모범시민 에이미는 알코올 중독 재활치료를 열심히 다닌다. 눈 비비며 일어나자마자 입에 담배를 물고 뒤창이 닳아빠진 반스(vans) 로퍼를 발에 끼워 넣으며 '난 치료받기 싫지만 친구들이 떠밀어~'를 흥얼거린다. 병원으로 향하는 너털 걸음에 맞춰 담배 연기를 '후우-' 내뿜자 그녀의 노래가 니코틴 입자에 포장되어 지구로 배송된다. 에이미 니코틴을 귀에 꽂으면 나는 즉시 지구로부터 소외되는데, 이럴 땐 친구들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음악이 인간의 일상을 장악한 외계 물질이라는.
근데 많이 들으면 안 좋다. 에이미로부터 소외되려면 김윤아를 듣는다. 김윤아는 에이미를 백화 시킨다.
화장실 소외
중학교에 들어가 보니 여자애들이 화장실을 우르르 떼 지어 다니는 문화가 있었다. 그 행위는 멋이 없었다. 나는 그 문화에서 나를 소외시켰고 친구들은 슬퍼했다. 친구들 속상한 게 거슬려서 나는 한 번은 혼자, 한 번은 함께 다니기 시작했는데 혼자 갈 때는 그들이, 함께 갈 때는 내가 소외되었다.
내가 나를 소외시킬 때 나는 죄짓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다시 혼자 다녔다.
왕따
반에서 소외당하는 남자애가 있었다. 하루는 그 친구가 급식실에서 자기 팔에 뜨거운 국을 쏟아 엉엉 울고 있었다. 긴팔 티셔츠를 입은 팔뚝 위에 토란, 콩나물 같은 것들이 붙어있었고 국물이 옷깃을 따라 뚝뚝 흘렀다. 그의 가까이 있었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내 물컵에 있던 찬 물을 그 친구 팔에 졸졸 부었다. 아이들이 그 남자애 좋아하냐고 난리가 났다. 나는 귀찮아서 그냥 '어. 좋아해.' 하고 신속히 씬을 종결짓고 밥을 먹었다. 그 친구에게는 거짓 고백을 한 것이 아직도 미안하다.
겨드랑이 소외
산책할 때 아무도 없는 구간에서 만세를 한다.
겨드랑이 소외감 느낄까 봐.
자기 삶에서 스스로를 소외한 사람
중학생 때의 내 성향은 어른이 되어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고 나는 주변인들로부터 '서운하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이러쿵저러쿵 이유가 많았는데 가만 들어보면 중학생 때 화장실 같이 안 가줘서 서운한 것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르르 떼 지어 화장실에 가야 하는 사람들은 자기로부터 소외되기로 작심한 것 같았다.
맛집 소외
유명 베이글집이 오픈한다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사진을 보았다. 저 줄로부터 영영 소외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든 신제품 품절대란으로부터도
영원히 영원히.
내 나라 소외
나는 한국에서 스스로를 소외시켜 미국으로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외계인이 되었다. 영주권자들이 받는 초록색 카드를 공식적으로 Alien Registration Card라고 부르는데, 물론 '외계인'이라고 아무도 번역 안 하지만 나는 속으로 혼자 외계인이라고 번역하고 좋아라 한다.
지구 소외
라디오헤드 노래 중에 지구 어딘가 지하에 처박혀 사는 향수병 걸린 외계인에 대한 노래가 있다. 톰 요크가 한창 뭔가 있어 보이고 싶을 때 만들었던 곡 같은데 나도 마침 한창 뭔가 있어 보이고 싶던 20대였던지라 내 안의 모든 멜랑콜리를 긁어모아 심취해 듣곤 했다. 오늘은 그 친구가 외로울까 봐 지하실로 내려가서 내 그린카드를 보여준다.
“봐봐! 나 외계인등록증 있어! 같이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