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남편의 구멍을 2차 3차로 방지하고자 맷과 레베카를 미리 불렀다.
남편은 훌륭한 삶의 동반자이지만 쇼 현장에서 매 순간 펼쳐지는 변수에 대처하기엔 너무 원만한 사람이라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도와줘서 감사한 마음만은 지극함. 고마워!)
맷과 레베카는 헐리우드에서 일한다. 맷은 최근에 아픈 아버지역을 충실히 소화했고 레베카는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나는 그들을 친구로 인간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들과 함께 할 때면 나는 3개의 분신으로 나눠지는 느낌을 받는데, 그만큼 철저히 퍼포머 입장에서 현장을 바라보는 능력이 있다. 이 친구들은 그들이 주인공일 때는 스스로 환하게 빛날 줄 알고 조력자일 땐 스스로를 암전 시킴으로 존재감을 발산한다. 내가 놓치는 구멍들을 묵묵히 메꿔 나간다.
어제는 사람들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다가 생각나는 걸 써줬다. 그 사람이 지닌 아우라와 결을 느끼며 손 가는 대로 그냥 적었다.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인간의 내면을 이리 대놓고 구경하는 일이 내 직업이라는 사실이 몰래 감격스러웠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다 불현듯 내 작업이 30대 때 보다 한층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는 어이없지만 다래끼.
나는 잘하고자 하는 욕망에 너무 불타는 인간형이었다 보니(30대 때 최고조) 쇼가 끝날 때마다 온몸의 열이 다래끼로 표출되곤 했다. 마치 불완전연소의 상징처럼 솟아있는 다래끼를 보노라면 마음이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작년부터인가?
다래끼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어제 집에 왔는데 녹초도 되지 않고 저녁 먹은 설거지까지 했다(설거지는 보통 남편이 한다). 은은한 희열만이 온몸을 감싼 채 밤새 지속되었다.
예전엔 쇼 있는 날은 밥도 잘 안 넘어갔는데
밥도 술술.
이제 드디어
그냥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