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보다 문명이 좋아
요세미티에서 샌프란 시댁, 모로베이를 거쳐 이제 내일이면 샌디에고로 떠난다.
보통 로드트립 중 집에 들르지 않지만 경로상 중간에 위치해 있어 잠시 이틀 정도 집에서 쉬는 중이다.
이렇게 떠돌아다니다 집에 있으니 집도 연말 여행지 중의 하나로 느껴진다. 그리고 여태 가 본곳 중 제일 좋다.
역시 나는 자연보다 문명파.
20대 초반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류의 작가에 열광했던 적이 있다. 그는 인간이 땅에 씨를 심기 시작하면서 인류가 망조에 들었다고 했지만 나는 그 첫 씨를 심은 사람에게 오늘 아침 헤이즐넛 향 커피를 마시며 잔잔한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중이다.
어제의 나는 헤이즐넛을 싫어했지만 오늘의 나는 헤이즐넛에 중립적이다.
이런 게 기적이다.
그래서 집에 잠시 들른 내 마음이 이리 좋은 이유는 자연의 '가차 없음'에 기인한다.
자연의 가차 없음은 무섭고 매력적이라 자꾸만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 들게 하지만,
심히 고달프다.
그렇게 가차 없이 미물 취급을 당하다 문명의 이기로 가득 찬 나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대자연이 주었던 따스함은 집에서 펼쳐진다.
이 또한 오래가지는 않는다.
집의 무료함은 자연보다 더 가차 없기에 머지않아 좀이 쑤시기 시작한다.
대자연 속에서 코요테 하울링을 들으며 텐트 안에서 공포영화를 즐겨 보는 것도 그 느낌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여행 떠나기 전에 넷플릭스 다운로드를 잔뜩 해 놓는데 대부분 연인이 깊은 숲에 하이킹 갔다 곰의 습격을 당하거나, 시골에 허름한 모텔에 친구들끼리 놀러 갔다가 친절했던 주인장으로부터 별안간 밤새 공격을 받는, 그런 삼류 영화들로 '엄선'한다.
나와 자연 사이, 얇은 천 하나만을 둔 채 그런 영화를 보다 보면 임사체험에 가까운 공포감이 몰려온다.
그렇게 힘겨운 밤을 자처한 후, 텐트 지퍼를 살짝 열고 아침에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노라면 찬송가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부활의 은사가 따로 없다.
남편은 교회도 안 가면서 아침부터 텐트 안에서 찬송가 부르는 나를 처음에 신기해했으나 요즘은 무반응으로 그저 불을 때고 커피를 내린다.
내일 샌디에고 날씨가 흐리다고 한다.
아마도 친구들과 잔잔한 호캉스 느낌으로 전개될 듯하다.
그리하여 나는 친구들과 신년 맞이 윷놀이를 하려고 윷과 윷판을 마련했다.
나무는 요세미티에서 2년 전에 주워왔고, 식탁매트는 집에 굴러다니던 것이다.
이 윷세트는 사실 '조'를 위해 만들었다.
일 년 전에 만들어주기로 약속해 놓고는 까먹고 잘 살다가 그가 최근에 윷세트 다 만들었냐며, 약속 일주년 기념할 판이라고 툴툴대기에 어젯밤 급하게 완성(이라기엔 5분 만에 만들어서 민망)했다.
만들어놓고 보니 살짝 마음에 들어 주기 아까운 생각이 든다.
그래도 줘야지.
조는 작년에 우리를 위해 더 심한 선물을 만들었다. 무려 나무로 깎아 만든 블루투스 스피커!
오늘 글의 마무리는 수미상관 기법이 불가능하므로 여기서 그저 멈추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