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호호수는 온통 눈세상이었어.
멀리는 설산이, 가까이 찰랑이는 물은 투명하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의 청량함으로 넘실댔지.
둥글둥글 거대 조약돌처럼 생긴 암석들이 물속에 늠름한 자태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데 얼른 보드에 올라타서 그것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어.
패들보드를 타다가 죽을 뻔한 적이 단 한번 있었는데 바로 이날이야.
내가 드라이수트(방수복)만 있었더라도 면할 수 있었던 사고였지만, 풍경에 정신을 잃은 나는 앞 뒤 분간 없이 물에 뛰어들어 버렸고, 손가락 발가락 동상이라는 삶의 경험값을 치렀지.
바람도 심하고 겨울이다 보니 아무도 패들링 하는 사람은 없었어.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추운 날씨에 젖으면 큰일 난다고 남편은 한사코 말렸지만 나는 그날 그 풍경에서 패들링을 하지 않으면 내 인생 전체가 무의미해질 것 같았어.
평소 함께 패들링을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였는데 그중 한 명은 나와 생각이 같았어. 우리는 보드를 끌고 신나게 물 쪽으로 다가갔어.
보드 뒷부분의 핀 높이 때문에 종아리까지는 물에 젖어야 보드 위에 올라탈 수 있어서 다리가 젖었는데, 순간 이게 차가운 건지 뜨거운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어. 액화질소에 발을 담근 기분이랄까? 비현실적인 차가움이었지.
일단 열심히 땀 내면서 패들링 하다 보면 발에 물기는 날아가리라 안일한 믿음을 품은 채 열심히 패들링을 시작했어.
초반 파도치는 구간을 넘어가려면(타호 호수에는 파도가 있어) 좀 열심히 패들링을 해야 하는데 너무 집중해 버렸는지 몇 분 사이에 너무 멀리 왔다는 걸 깨달았고, 마침 그 구간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어. 뒤돌아보니 같이 출발한 친구는 파도구간을 넘지 못하고 물가에서 놀고 있더라.
세찬 바람에 밀려 큰 돌들이 몰려있는 구석으로 강제 이동을 당했는데 나는 보드가 앞뒤좌우로 그렇게 사정없이 들렸다 내리 꽂히는 경험은 처음이었어. 그 구간에서 나가려고 발버둥을 쳐 보았지만 바람과 물살의 힘에는 당할 수가 없었어.
당이 떨어지고 체력도 바닥나고 체온이 급격하게 내려가는 게 느껴졌어. 손가락과 발가락은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였지.
나는 구석에 처박힌 김에 돌 위에 올라가 한참을 쉬었는데 몸이 더 이상 추위를 느끼지 않는 듯한 느낌이 사악 들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거야.
이렇게 생을 마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남편한테 이 모험담을 꼭 말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어니스트 섀클턴의 비장한 각오를 떠올리며 패들링을 다시 시작했어.
나는 뱃사공들이 뱃노래를 왜 부르는지 그때 깨닫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패들링을 할 때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지!'이 두 문장을 노래로 만들어서 부르고 있더라? 진짜 웃기게도 너무 효과가 좋았어.
그때 자작 뱃노래를 안 불렀다면 결과가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필사적으로 구석에서 빠져나와 출발지점으로 방향을 틀자 저 멀리 남편이 보였어.
남편은 나를 포착하곤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비치타월을 흔들었어. 비치타월이 그렇게 포근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건 또 처음이었지.
당연히 갖춰야 할 준비물을 갖추지 못했을 때 목숨을 잃을 만큼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배웠어. 신났을 때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다음에 타호로 겨울 패들링을 가게 되면 꼭 드라이수트를 입고 천천히 노를 저으며 풍경을 감상해 볼 생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