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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Apr 02. 2023

이상함에 대하여

스승 욕심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전학을 갔다.


새로운 환경은 나에게 스트레스보다는 쾌적한 자극으로 다가왔고 삶에 불어닥친 쾌적감에 나는 한동안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하루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노래를 하다 인기척에 문쪽을 바라봤더니 아이들이 화장실 문에 우르르 몰려 노래하는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빛은 무해했고 그저 '저런 사람도 있구나' 정도의 생경함만 띄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손을 닦으며 부르던 노래를 마저 부르고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날 후로 아이들은 나를 이상한 아이로 보면서도 좋아했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이상했고 학교를 사랑했다. 대학교 가서도 대학원 가서도 사회생활 하면서도 내 이상전선에는 이상이 없었고 지금도 이상(異常)하다.




나는 2007년 즈음 접한 영국 코미디물 The Mighty Boosh를 아직 좋아한다. 그 쇼는 마음의 눈을 열고 보면 재밌지만 그냥 보면 정말 이상한 걸작이다. 신혼 때 이 쇼를 보며 낄낄대는 나를 볼 때마다 남편 얼굴이 수심으로 가득 차곤 했는데 몇 년 전 남편이 심경을 고백했다.


"자기야,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정말 한동안 걱정했어. 이제 그 이상한 거 안 봐서 너무 다행이다."


남편 앞에서 틀지 않을 뿐. 사실 아직도 본다. 내가 그 매직서커스유랑단 같은 쇼를 보는 이유는 예술의 경지에 오른 무심함 때문이다 ('예술의 경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예술의 경지이기에 어쩔 수 없다).


그 무심함이란 '이렇게 막 던지는데 알아볼까?'의 연속을 말한다. 관객을 웃기고픈 마음만으로 일관되는 그 아무말대잔치는 내게 '보고 들을 만한 것들'로 넘쳐났다.


갑자기 딴 소리긴 하지만 이와 반대편에 있는 문장을 최근에 마주했는데 바로


'일독을 권합니다'이다.


누군가 링크를 보내주며 일독을 권할 때

나는 길에서 '도를 아십니까'를 만난 것처럼

그 링크로부터 달아난다.


나는 부모님이 봄나물과 가을송이를 제외하고 나에게 딱히 뭘 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그들의 교육철학은 저 영국 코미디쇼처럼 무심했다. 이것도 내 성정이 부모님의 철학과 맞아떨어진 것일 뿐 모든 자녀에게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




이상한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자세는 20대 때 여행을 통해 강화되었다. 당시 나는 길바닥에 주로 앉아있는 이상한 사람이었기에 이상한 사람들을 매일 만났다. 비율로 따지면: 신기한 3 정상인 4 아픈 2 훌륭한 1 이였는데 사실 타인의 세계는 나에게 다 이상했다.


그들과의 대화는 대부분 내가 길에서 작업한 글씨에 관한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사는 이야기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사적인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공개했다. 다시 못 볼 사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하루는 델프트(Delft)에 있었다.

땅바닥에 앉아 있으면 보도블록 사이의 미세한 잡초와 이끼 같은 것들이 잘 보이는데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이끼가 보이길래 넋 놓고 보고 있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멀끔한 차림의 신사가 내 이끼 관람을 막아섰고 이내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재밌는 사람이었다. 천체물리학자였는데 내가 시간에 대해서 묻자 자기 손목을 보여주며 자신이 왜 시계를 안 차고 다니는지에 대한 인트로를 시작으로 공간과 차원의 이야기를 아주 쉬운 말로 설명해 주었다. 나는 마음을 있는 대로 열고 경청했다.


푹 빠져 듣고 있는데 별안간 그가 설명을 하다 말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다 큰 어른 남자가 공공장소에서 우는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애렸다. 나는 왜 우냐고 묻지 않고 그냥 그가 다 울 때까지 옆에 있어주었고 그렇게 시간의 이야기는 눈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길에서 만난 인상적인 친구들과 이메일을 교환하곤 했는데 그 사람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했던 모든 말과 얼굴과 이름을 기억한다.


생면부지 타인과의 깊은 교감은 내가 타인을 그저 표상으로 보는 삶을 살지 않도록 부추겼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나를 무방비 상태로 두었을 때 자주 일어났다.

그 상태의 나는 이상했다.


나는 내가 가장 이상했던 시절 가장 많은 스승을 만났다. 그래서 스승 욕심이 많은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상하게 있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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