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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Apr 06. 2023

남편의 비문증






"나는 한국이 좋아.

사람들도 따뜻하고...

근데 한 가지 힘든 게 있어."


"뭐?"


"광활하지가 않아.

한국이 광활하지가 않아서 힘들어."




불평이나 힘든 내색을 잘하지 않는 남편이 한 번씩 하던 말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광활하지 않아서 힘들구나... 그래 넓은 땅에 살다 와서 아무래도 그렇겠지.'

정도로 남의 고통을 내 맘대로 재단했다.


지평선을 매일 눈에 담지 못하는 상황이 남편에게 먹고사는 문제만큼이나 심각했을 줄은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날 때부터 지평선을 보지 않는 삶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광 w i d e -

활 o p e n -

함 n e s s .


광활함을 얘기할 때 남편은 꼭 저 단어를 사용했다. 보통의 미국인이라면 가장 직관적으로 vastness 정도가 떠오르겠지만 남편은 광활의 '광廣:넓은'보다는 '활闊:트인'에 더 무게가 실린 저 단어를 좋아했다. 사실 저 단어는 어색한 영어단어다. 통역하면서도 'wide-open'이나 'openness'는 들어봤지만 저런 모양은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남편의 의도는 알겠으므로 남편과 나 사이에서는 단어로 쳐 주었다.  


남편의 한국 생활에서 광활함을 앗아간 주범은 주로 아파트단지였다. 땅에 있어도 북한산 꼭대기에서도 시야를 막아 서거나 걸려 들어오고야 마는 비문증이었다. 이 비문증만 없었어도 남편에게 한반도도 광활할 수 있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어느 지점 하나 광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파트에서 태어났기에 비문증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수평선과 지평선을 보며 자란 남편은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사실에 마음 깊이 병이 나버린 것이었다. 신혼 때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던 남편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한 이유였다.


땅으로부터 유리되어 3 이상 올라가는 아파트라는 건축물을 그토록 많이 그토록 높게 허용한 우리 삶의 양식에 대한 유감이었다.




나는 문명의 이기를 좋아한다.

헐벗은 태초의 인류처럼 온갖 먼지를 뒤집어쓰고 로드트립을 하다가도 호텔에 체크인하는 순간 '빨리 뜨뜻한 자쿠지에 들어가고 싶다! 자본주의적 세련미가 흐르는 음식을 먹고 싶다!'의 세계로 확 젖어든다. 이런 냉온탕적 대비가 주는 희열을 좋아하고 인간이 문명을 지은게 여러모로 기특하다. 그럼에도 아파트를 3층 이상 올리기로 했을 때, 그와 비슷한 결을 지닌 모든 선택을 방관했을 때 인류는 문명文明에서 무명無明으로의 회귀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와서

남편이 나고 자란 광활함을 보니

'광활함'이 '없어서' '힘들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남편의 힘듦을 마음대로 재단했던 내 과거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체득적 앎을 통해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부활'이라는 단어가 내게 지닌 의미가 있다면 이런 것이다.


개념적 앎으로

나는 한 번도 다시 태어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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