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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Apr 11. 2023

쇄빙선처럼 예쁜




콜로라도 가는 길.


 위에 있으면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눈앞에  있다. 이내 섬네일로 변하는 그들은 차창 밖으로 둥둥 떠다니기 시작하고 눈길이 머무는 섬네일은 자동 재생된다.


매번 이야기의 두께가 달라지는 것은 그날의 나와 오늘의  사이의 간격이다. 존재의 황홀은 어디서나 느낄  있지만 길만큼 증폭이  되는 공간도 없다. 오늘의 섬네일은 자그레브.




자그레브 역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었다.

기차는 비 내린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멈춰 서고 창 밖에는 반짝이는 가로등이 멋 옛날 로마가 깔아 둔 보도블록 모서리마다 촘촘히 내려앉았다.


내 몸 만한 백팩, 글씨 쓸 도구가 들어있는 슈트케이스를 끌고 숙소로 향한다. 차가운 색채와는 다르게 공기가 따뜻하게 나를 안았다. 도시가 나를 좋아했다. 난생처음 보는 도시라도 진입하자마자 나를 환영하는 느낌과 밀쳐내는 느낌이 있는데 자그레브는 내게 여행을 잠시 놓고 자기와 함께 살자고 청했다.


새벽에 짐을 푼 탓에 첫날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나는 딱히 뭘 해야 할지 몰라 붓을 들고 옐라치치 광장으로 나갔다. 여행을 잘하려면 잘 먹고 잘 자야 하는데 잠을 잘 못 잤으니 온 세상이 못나보였다. 비로 젖은 광장에 내린 햇살은 평소 같았으면 감탄했겠지만 온통 못마땅했다.


하릴없이 물통을 꺼내  모금 마시고  모금 벼루에 붓고 먹을 쥐고 두어  돌렸다.


열 번도 아니고 정말 두어 번. 별안간 마음이 진정되면서 밤새 잘 잔 몸이 되었다. 마치 반신욕을 하기 위해 42도로 맞춰 놓은 널따란 온탕에 몸을 담그자마자 하아-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즉각적 괜찮아짐이었다.




"너도 그림 그리는구나? 나도 그림 그리는데. 니 얼굴 한번 그려줘도 돼?"


기분이 괜찮아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인도에서 왔다는 한 청년이 내 얼굴을 그려주겠다며 슥슥거리길 5분 정도 지났을까. 내 눈앞에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짠!' 하고 들이민 그림에는 윤슬이 일렁이는 평화로운 강이 있었다.


이 청년은 나에게 재밌는 사람들을 많이 물어다 주었다. 여행자 주제에 자그레브에 아는 사람이 참 많았는데 그 친구 덕에 자그레브 생활이 정신적으로 윤택할 수 있었다.


내 여행 캐릭터가 길에서 글씨 쓰고 노는 캘리그래퍼였다면 그 친구는 에이즈 인식개선 활동가(AIDS awareness activist)였다. 가는 곳마다 강연료를 수입 삼아 자전거 타고 세계여행 중이었는데 2009년 만났을 당시 2년째 여행 중이었고 자신이 마흔이 되는 2022년에 여행이 끝날 거라고 말했다.


"2022년? 넌 나보다 한참 미쳤구나!"


길 위의 미친넘들은 하나같이 쇄빙선을 닮아있었다. 뾰족했고 예뻤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2022년이 왔다. 나는 더 이상 한국에 살고 있지 않았고 결혼을 한 상태였고 팔자에 없는 공무직에 몸 담고 있었다. 그날도 하루치만큼의 몸과 영혼을 직장에 팔아넘기고 퇴근하려는 찰나 페이스북 메신저가 울렸다.


"나 아직 여행 중이야. 나 방금 LA공항 도착했어! 만나자!"


나와 동갑이었던 그는 그의 여정이 끝나는 2022년 5월 LA에 도착했다. 점심시간 밖에 낼 수 없었던 나는 직장 근처 라크마(Lacma, LA County Museum of Art) 입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를 보러 달려가는 나는 직장이라는 곳을 다니는 어른이 아닌 아닌 2009년의 미친 나였다.


멀리서 그의 실루엣이 보이자 눈물이 땀처럼 송골송골 맺혔다. 나는 만화처럼 바람에 날리는 눈물을 닦아가며 열심히 달렸다. 마스크에 가린 그의 얼굴이 웃고 있음은 멀리서도 알 수 있었고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내 친구이자 도른자 시절 나의 젊음이었다.


마흔의 우리는 길에서 어린아이들처럼 손잡고 좋아서 방방 뛰다가 웃다가 울다가 그랬던 것 같다.




자그레브가 나를 왜 사랑했냐면 내 삶에 아직 유효한 이런 친구들을 많이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브런치북(Nomadic Brush)에 간략하게 몇 명만 적어놨는데 앞으로 한 명씩 생각날 때마다 적어볼 생각이다.


20대 때 쇄빙선이 여행이었다면 지금 나의 쇄빙선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있다. 크로아티아에서 헝가리로 넘어가는 행위와 칼로 마늘을 까다 손가락만으로 까 보는 행위를 시도해 보는 것에 본질적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새 길이 나는 느낌은 똑같고 그 확충의 느낌을 여전히 사랑한다.


나는 사과 한쪽을 열두  정도 베어 야금야금 먹는 스타일인데 어제는 난생처음 새우깡을   가득 집어서 입에  차게 먹어보았다. 입안 가득 새우깡은 하나씩 감질나게 먹는 맛과는 달랐다.


내가 알던 새우깡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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