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아끼기 귀재인 남편은 특정 호텔 체인만 예약해서 포인트를 극대치로 사용하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존중한다. 뭐 그럴 수 있지. 계획 짜는 거 싫어하는 나는 모든 일정을 관할해 주시니 일절 불평불만하지 않는다.
"우리 오늘 밤에는 모텔에 자야 해. 메사 베르데 국립공원 근처에 우리 가는 호텔이 없어. 괜찮아?"
하룻밤 모텔에 자는 게 뭐 대수라고 양해까지 구하는지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했다.
주차장에 들어섬과 동시에 나는 남편이 양해를 구한 이유를 알았고 마음속 기대치를 마이너스 100으로 수직하강 시켰다. 오로지 잠만 재워주면 고맙습니다 되뇌이며 방에 들어서니 따신 물 나오는 것도 감사하고 벽과 지붕 있는 것도 감사했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매사에 똑 부러지고 올바른 남편은 위층 소음과 이불이 단정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을 바꾸고 싶어 했다. 한눈에 봐도 경기 침체에 난황을 겪고 있는 모텔이었기에 나는 그들이 한 방 가격으로 두 방을 청소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극구 말렸다. 택스 포함 89불에 뭘 바라냐 그냥 잠만 자고 나가자. 짐 다 풀었는데 당신 왜 그러냐. 여기가 호텔도 아니고 아까 체크인할 때 주인 얼굴 힘든 거 못 봤냐 여러모로 다그쳐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여보, 빨리 짐 싸. 옆 도시에 우리 호텔 찾았어."
밤 8시, 주인과 한바탕 대화를 나눈 후 돌아온 남편은 상기된 얼굴로 당장 떠나자고 말했다. 주인의 태도가 - 자신의 기준에 - 아주 불량했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남편 편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모텔 주인 마음이 더 이해가 가서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입을 열면 모텔 주인 편을 들 것만 같았다.
하루종일 하이킹하고 피곤해 죽겠는데 밤 8시에 또 꾸역꾸역 다시 짐을 싸 옆 도시로 한 시간을 이동한 후 다시 체크인을 해서 짐을 풀고 침대에 걸터앉아 양치하며 시계를 봤다. 거의 밤 11시였다.
내 생각에 남편의 행동은 온갖 긁어 부스럼 만들어 고생하기로 작정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남편만의 이유가 있겠지 하며 계속해서 입을 닫은 채 눈도 닫고 잠을 청했다.
20대의 나는 식당에서 치킨을 시켰는데 소고기를 주면 컴플레인하는 사람이었다. 30대의 나는 상황 봐가며 컴플레인보다는 수정 요청을 하는 사람이었고 30대 후반이 되자 군말 없이 나오는 대로 먹는 사람이 되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군말 없이 그냥 먹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다시 주문을 하면 또 기다려야 하고 같이 앉은 사람들을 신경 쓰게 해야 하고 반환된 음식은 어떡하나 싶어 재주문은 여러모로 쓸데없는 행동 같았다.
물론 똑 부러지게 하는 게 모두에게 좋은 일일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 특성에 없고 내 개성에 없는 무언가를 끌어내는 행위를 그만둔 지 오래되었다. 아마 중2 때 수학책을 한번 열어보고는 다시 열지 않기로 한 것이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잘못 나온 주문을 아무렇지 않게 그냥 먹는 다른 이유는 살다 보니 각자의 사정이라는 것에 본의 아니게 관심이 가기 시작해서다. 이는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상당 부분 제거해 주었는데 중요한 것은 이게 '본의 아니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남의 사정을 헤아려보려 노력해 본 적은 없다.
다른 재밌는 이유는 삶이 나에게 준 온갖 좋은 것들이 이런 식으로 던져졌다는 데 있다. 치킨이 먹고 싶었지만 내 인생이 소고기를 준다면 그냥 먹어본다. 나는 나보다 내 인생을 더 믿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차갑고 뜨거운 방식으로 나를 줄기차게 사랑했고 나보다 지혜로웠기에 믿을 수 밖에 없었고 저절로 생긴 이 믿음은 내가 계속해서 자연스러운 삶을 선택하도록 몰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