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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Apr 13. 2023

사막에서 사과하기




어제는 사막에 있었다.  


미국엔 다양한 종류의 사막이 있는데 어제 간 곳은 모래언덕형으로 하이킹 난이도 상급에 해당하는 곳.


사막에서 식겁한 적이 많았던지라 출발할 때부터 주차장에서 으라차차 기합을 넣고 짝! 짝! 아저씨 박수를 치며 스스로에게 소리쳤다.


"자! 지금부터 웃음기 사라지고 땀나고 계속 목마를 거야! 머리가 아파오고 얼굴 모세 혈관은 확장될 거야! 허벅지에 불도 날건데 준비됐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렇게 '나 죽었소!' 하고 출발을 하면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 이미 죽은 몸이니 어떤 자극도 환영하게 된다. 좋은 자극과 나쁜 자극의 경계가 무너진다.




"아찌! 서 있는 김에 물 좀 떠온나! 부엌 가는 김에 귤도 좀 갖고 오고!"


우리 집은 함부로 서 있으면 안 되는 곳이었다. 가족 중 아빠 닮은 사람들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생활하길 좋아했기에 주로 와식생활을 했는데 그중 하나라도 기립하면 그간 미뤄뒀던 '~ 한 김에'를 당해야 했다.


이 '김에 문화'는 성가신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학교 간 김에 재밌게 놀았고 신난 김에 공부도 했다. 이번생엔 태어난 김에 뭘 해볼까 하다 그냥 생긴 데로 허락된 시간을 살기로 했다.




어제는 모래언덕 걷는 김에 발생하는 내 육신의 고통을 지난날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헹궈내 보는 용도로 바치기로 하고 걸어보았다. 천지분간 못하던 어린 시절에 알게 모르게 세상에 끼친 온갖 민폐를 조금이나마 씻어내고 싶었다.


나는 발이 푹푹 빠지는 뜨거운 모래에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속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물과 사람을 거쳐 자연에까지 미안한 대상은 너무도 많았다.


모래사막의 오르막길은 보통 오르막길과 다르다. 다섯 걸음 정도를 쉬지 않고 떼면 한 걸음 정도의 움직임에 이른다.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고통이 심해질수록 어떤 사소했던 민폐 하나쯤은 헹궈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햇볕은 뜨거웠으나 청량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내 땀을 닦아내며 두통을 쫓아내 주었다. 덕분에 미안한 마음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사막은 보는 시각에 따라 정상이 여러개였다. 두 시간 정도를 걷다 남편과 도달해 보기로 한 정상에 다다르자 이러다 숨이 멎는 게 아닌가 하는 찰나를 넘기고 벌러덩 누웠다. 그리곤 남편에게 말했다.


"나 지금 나 혼자 인생사죄의식 중이거든. 죽었다 다시 태어나야 되니까 나 모래에 좀 묻어줘."


남편은 나를 열심히 땅에 묻었다. 매사 이렇게 성실한 사람이다. 너무 성실해서 신혼 때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성실한 세계관과 게으른 세계관의 조합은 극복하면 좋은 조합이지만 극복 지점까지는 지옥이다. 그렇다고 지난 10년이 지옥만 있지는 않았다. 연옥도 있었다. 이따금씩 천국도 있었고.


열심병(남편의 기저질환)이 발동한 남편은 나를 너무 깊이 묻어버리고 있었는데 흉부가 무거우면 패닉어택이 올 것 같으니 흉부는 얇게 덮어 달라 요청했다.


안 된단다. 일관된 두께로 덮어야 보기 좋으니 참으란다. 얼른 사진을 찍고 다시 살려주겠다며. 나는 사람도 아내도 아니고 그저 남편의 촉각놀이 소재였다.


인간에서 놀이소재로 강등된 나는 모멸감과 꼼짝달싹 못함, 그리고 남편의 구원에 의존해야 산다는 사실에 화와 공포감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온몸이 묶인 채 화로 활활 타오르는 경험은 또 처음이었는데 정말 남편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있었다. 뜨거운 사막의 기운과 내 안의 화기를 연동시켜 제대로 한번 다시 태어나보라는 남편의 깊은 사랑이었다.




춤추는 건 아니고 급경사를 안전하게 내려오는 모습이다.


크롭핑이 기괴하지만 재탄생의 순간이다.


Great Sand Dunes National Park and Preserve, Color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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