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어는 미묘하다.
미국, 유럽, 대구의 느낌이 혼재된 억양을 지니고 있는데 남편은 나를 처음 봤을 때 스칸디나비아 출신 아시아인일 거라 생각했다고. 미국 와서도 그런 소릴 종종 들었다.
내 귀에는 그저 지난 날의 행적이 불가피하게 녹아있는 소리로 다가온다. 내 친구 연주는 내가 한국말(대구 억양)할 때와 영어 할 때의 간극이 커서 사람들이 양극성 인격으로 오인할 수 있으니 최대한 대외적 한국말 사용을 권고했다.
뒤돌아보면 경상도 억양은 영어 하기 좋은 바탕 억양이 되어주었다. 한국어는 프랑스어처럼 음절중심(syllable-timed)의 언어지만 경상도 쪽은 한국의 여타 지역과 다르게 영어처럼 강세중심적(stress-timed) 특성도 살짝 있어서(내 귀에 그렇다는 말. 음운학적 근거 없음) 영어가 지닌 음운적 역동성을 따라가는데 용이했다.
터무니없는 예를 하나 들자면:
표준 한국어를 하는 분들은 '이마트'를 대체로 '2마트'처럼 발음하는 반면 대부분 경상도 사람들은 정말 'E마트'라고 말한다(심한 분들은 가끔 'E면지', 'E렇게', 'E마'도 함).
그리고 이건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혹시 누군가에게 도움될까봐 적어보는 한글 모음 ‘ㅣ‘와 영어 모음 ’i' 이야기:
대학원 시절, 영어 음운학 강의를 들었는데 교수님이 스코틀랜드 사람이었다.
칠판에다가 갑자기 '비'와 '입'을 적더니
한국인이 어려워하는 발음 중 하나인 i의 단모음 소리를( [i] dip, bib, sip... 등) 잘 하기 위해서는 '입'이라는 글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님 귀에는 같은 한글 모음 ㅣ도
‘비’는 [i:], ‘입’은 [i]로 들린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은 '입'은 받침 때문에 불가피하게 모음이 짧아진다는 것을 지적하시면서 i가 단모음으로 날 때 받침이 있는 것 처럼 발음해보라 하셨다. 물론 다른 언어니까 영어에 완벽히 대입되진 않지만 일말의 힌트가 될거라며. 저 부분을 지적하시기 전까지 나는 hill과 heel의 발음 차가 크지 않은 줄 알았다.
스칸디나비아는 권역이 넓고 국가별 언어가 있지만 대부분 영어가 유창한 편이다. 애매한 '어'발음(schwa, /ə/)을 폭넓게 사용하고 미국의 호들갑과 영국적 차가움의 중간 정도로 듣기 편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행하면서, 이민와서, 여기저기 억양을 듣다 보니 두리뭉실 스칸디나비아가 되었나 싶기도 하다.
가끔 주변에 충분히 뜻이 잘 통하는데도 발음과 억양을 지나치게 영미권스럽게 만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본다. 물론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 정도 했으면 이제 나만의 억양으로 말해도 괜찮고 심지어 그건 멋진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보편성을 통과한 개인의 고유성은 아름답다.
미국에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만큼이나 수많은 억양이 존재하고 누가 영미권 억양을 제대로 사용하며 말하는지 관심있게 보는 사람은 없다. 그저 저 사람이 하는 말에 들을만한 무언가가 있는지에 귀 기울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