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셔틀 방금 놓쳤어!"
평소 자비심의 아이콘인 남편은 유독 저런 상황을 못 견뎌한다. 마트에서 하필 더 오래 걸리는 줄에 걸려들거나 주차 공간을 옆 차에게 뺏기거나 교통신호가 자기 앞에서 빨간색으로 변해도 비슷하게 행동한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예민하지 않다. 개성을 발휘할 필요가 없는 공간에서는 최대한 무색무취형 인간으로 존재하고, 뭘 놓쳤다거나 누가 내 자릴 채 갔다거나 이런 류의 생각을 일절 하지 않는다.
내 인생이 온전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셔틀 놓친 일에 무슨 인생까지 나오냐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인생에 들어와 있는 모든 것들은 크건 작건 역경이건 순경이건 그대로 온전하단 걸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내 인생에 커다랗게 들어와 있는 누군가가 저런 태도를 십 년째 고수할 뿐 아니라 말로 그 생각을 뱉어 낸다는 것은 적지 않은 고역이다.
남편이 호텔 셔틀을 놓쳤다고 인상을 쓰며 이미 우리의 통제 밖으로 달아난 사건에 대해 징징대는 모습에 애써 웃으며 말했다.
"셔틀은 시간 돼서 떠난 거야. 우리가 놓친 건 아무것도 없어. 배고픈데 잘 됐네, 밥 먹고 오자!"
어제 남편의 징징댐은 내 뒤통수 밑에 불을 붙이더니 심장 리듬에 따라 두개골을 때리는 편두통을 자아냈다. 눈알이 뜨거워지면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묵직하고 새로운 리듬이 일어났는데 누우면 고통이 더해지는 특징이 있었다.
오후에 시작된 머릿속 징소리는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멈췄다. 눈을 뜨자마자 남편에게 당부했다.
"자기야, 오늘은 제발 뭘 놓쳤다느니 그런 말 하지 말자. 난 그냥 여행할 수 있는 게 행복해."
"알았어 미안. 자기 그 말 싫어하는 거 아는데 나도 못 고치겠어."
"괜찮아. 우린 서로 적당히 이상하니까. 그냥 서로 지쳤을 땐 조심하자."
"그래."
새벽 5시
극적 화해에 도달하자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짐을 살펴보니 커피콩만 있고 그라인더가 없었다. 나는 마치 이러려고 일부러 그라인더를 집에 놓고 온 사람처럼 스테인리스 텀블러를 손에 쥐고 커피콩을 하나씩 콩콩 찧어 가루로 만들기 시작했다. 재밌었다. 내 인생은 이리도 온전했다.
"내가 나머지 할 테니까 자기는 세수하고 준비해."
남편은 더 큰 자기 텀블러 가져와서는 작업을 마무리하더니 까끌까끌 콩가루가 적당히 씹히지만 뜨거운 정성이 담긴 커피를 내밀었다. 구체적 제조과정에 대해선 굳이 묻지 않기로 하고 한 모금 마셔보았다.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