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숙희
참치
평생 참치를 먹으면서
본연의 참치맛이 원래 이 맛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다른 물고기들은 웬만하면 본연의 맛이 이렇겠거니 납득이 갔지만 유독 참치만은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던 것이다. 여타 다른 물고기들처럼 횟집 어항에 놀고 있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제는 미사키에 갔다.
내 친구 유카리와 마스미가 살고 있는, 힙스터들이 많이 사는 어촌인데 참치회가 유명하니 꼭 먹어야 한다고 했다. '참치 사주는 친구가 있으니 인생 잘 살았네' 하는 흐뭇함도 잠시, 미사키에서 참치회를 먹는 행위는 생각보다 위험한 행동임을 알게 되었다. 아카미(붉은 살)는 담백한 맛으로 먹는 건 줄 알고 살았는데 이 부위마저 기름이 좔좔 흐르는 것이 젓가락이 수차례 미끄덩했던 것이다. 담백하지 않았다. 풍요로운 기름기의 대향연이었다. 아카미가 이 정도니 나머지 부위에 대한 감탄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내 인생에 더 이상 참치는 없음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인연은 생에 한번 만난 것으로 충분하다.
후지산
나는 후지산을 좋아한다.
산의 원형적 모양새를 하고 있어서다.
애기들에게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크레파스로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후지산 모양의 산을 그린다.
그래서 좋다. 필봉筆峰과 이등변삼각형을 좋아하는 취향도 작용했을 것이다.
마스미가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저게 후지산이야. 오늘 좀 흐려서 안 보이는데 그래도 보이지?"
보였다.
어떤 산은 흐린 모습을 본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숙희
숙희는 후지산 같은 인간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숙희처럼 잘 다듬어진 육각형의 인간이 잘 없다.
숙희는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는 나의 모친을 연희라고 부르는 이유와 같다. 숙희는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 내게 부모 같은 사랑을 주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월급을 받아온 날에는 내게 맛있는 밥을 사주고 내가 돈 없어서 사지 못했던 신발을 사줬다. 에너지만 가득해서 공허하던 스무 살 가슴을 사랑으로 채워주었다. 내 안의 내 사랑을 끌어다 쓸 줄 모를 때 숙희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숙희를 도쿄에서 10년 만에 만났다.
도쿄 스카이트리 맥도널드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앉아서 기다리면 될 일을 굳이 밖에 나와 에스컬레이터 옆에 서서 뒤꿈치를 들고 나를 놓칠세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울컥했지만 일단 삼키고 깔깔 웃으며 언니를 끌어안았다. 만나자마자 길가 벤치에 앉아 네 시간 이야기를 했다.
배고픈 줄도 목마른 줄도 몰랐다. 숙희는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