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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Dec 10. 2022

이런 바람은 처음이야




한 번은 산타페 댐 공원에 있는 저수지에 패들링을 갔는데, 햇살을 받은 잔잔한 윤슬이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었어.

바람도 딱 적당했지.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스트레칭하고 꿀물도 좀 미리 마시고는 물 위에 패들보드를 띄웠어.


리쉬를 발목에 착! 감고 탁! 점프하면서 올라탔는데 그때부터 별안간 등 쪽에서 바람이 '휭~'하고 불기 시작하더니 뒤에서 누가 막 떠미는 것처럼 보드가 앞으로 쭉쭉 나가더라?


물을 쳐다보니 탁한 에메랄드 빛이었는데 그때 해파리가 나왔던 그 물색이라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했지.


처음 접해보는 속도감에 무서움 반 신남 반으로 나는 알 수 없는 흥분감에 휩싸였어.

어릴 때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보던 열대우림 나무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휙휙! 지나가는 나무들을 감상하느라 정신을 잠시 놓았나봐. 그 사이에 갑자기 눈 앞에 낚시하는 분들이 나타났어. 낚시 구간으로 들어가 버린 거지.


그분들은 내가 빠른 속도로 바람에 밀려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 급하게 낚싯줄을 감아올렸고 나는 본의 아니게 온 세상 민폐를 끼치며 "쏘리~ 쏘리~"를 외쳤지.


"이런 바람은 자주 안 부는데, 일단 좀 여기 세워놓고 쉬다가 가요!"


낚시하는 분들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어.


그치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몸에 힘이 남아돌아 바람을 맞설 수 있을 것 같았어.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지!


"아니예요, 괜찮아요! 이 정도 바람은 많이 맞아봤어요!(첨 맞아봄) 고마워요! 물고기 많이 잡으세요!"


비장하게 꿀물을 들이킨 나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서도록 보드를 틀었어.


패들링을 열 번 정도 했을까? 바람이 심하긴 했는지 분명 패들링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나가는 느낌이 없고 후진하는 느낌이 드는거야.


그 느낌은 옆에 나무들을 보니 사실로 확인되었고, 후진을 하다 하다 아까 그 낚시하는 분들을 다시 만날 판이 되었지.


너어~무 부끄러워서 나는 죽을힘을 다해 패들링을 했어. 다시 만날 어색함을 생각하니 불끈 힘이 다시 솟아났어.


'할 수 있다! 나는 앞으로 가고 있다! 잘한다! 조금만 더!'


결국 나는 그분들을 다시 만나고야 말았어. 탈진상태였던 나는 군말 없이 패들보드를 그분들 옆에다가 세우고 무슨 고기 잡나 구경하면서 10분 정도 쉬었지.


10분을 쉬었을 뿐인데 다시 또 몹쓸 힘이 솟아나기 시작했어.


"바람이 이제 좀 잦아들었네요. (안 잦아듦) 구경 잘 했습니다. 저는 이제 그만 슬슬 가볼께요!"


"굿럭!"


아저씨들은 나의 행운을 빌어주었고 다행히 그 덕에 낚시 구간은 벗어날 수 있었지. 그럼에도 바람은 전혀 잦아들 생각이 없었어.


이번엔 바람에 맞서지 않기로 하고 그냥 패들보드를 물가로 몰고 가서 땅바닥에 누워 쉬었어. 바람은 불었지만 햇볕에 달구어진 땅바닥이 따스하니 좋더라.


온기를 즐기는 것도 잠시. 갑자기 확성기로 안내 방송이 들려왔어.


"보안 카메라에 위험한 행동을 하는 패들러(카약이나 패들보드를 타는 사람)가 잡혔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차에 타세요!"


나는 설마 저게 나일거라고는 생각을 안했는데, 레인저 아저씨가 차에서 내려서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오시더라?


"괜찮아요? 혼자 왔어요?"


"네, 저는 아주 괜찮아요. 저 때문에 오신거예요?"


"네. 당신 때문에 왔어요. 지금 패들링하는 사람 당신 밖에 없어요. 주차는 어디에 했어요? 태워줄 테니 얼른 타요!"


레인저 아저씨는 트럭 짐칸에 내 패들보드를 싣고 나를 앞에 태우고는 남편 있는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주셨지.


레인저 아저씨 트럭에 실려오는 나를 보고 남편은 실종 미아를 찾은 부모 얼굴을 하고 레인저 아저씨에게 연신 고맙다고 하더라.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절대 이기려 들면 안 돼.


그냥 어디 구석에 편안하게 앉아서 쉬어야 해. 그러다 바람이 멎으면 다시 가거나 주변 도움의 손길을 적극 이용해야 한단다!


낚시 구간에서 겨우 벗어나 한숨 돌리는 아찌. 거친 물살의 흐름을 살피는 중이다. 레인저 아저씨에게 구출되기 직전의 모습. 이야금 그림 YAGEUMEE ILLU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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