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러 가는 길에 있었던 이야기.
차에서 남편과 대화를 나눈다. 우린 대화를 좋아하지도 마다하지도 않는 편인데 대화를 할 때면 주로 쓸데없는 얘기를 한다.
쓸데없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사이란 귀엽고 심오한 것이다. 차를 탔으니 나는 늘 그렇듯 새로 배운 단어를 남편에게 말해준다. 나에겐 지적 호기심 - 혹은 허영심 - 을 자랑하고픈 병이 있다.
"당신 빙퇴석(moraine)이라고 들어봤어?"
"빙퇴석? 그게 뭔데?"
"나도 어제까지 몰랐거든? 눈덩이지구이론(snowball earth)을 증명하는 단서 중 하나래."
"아... 모레인? 음. 돌 이름치고 뭔가 예쁘네. 또? 또 뭐 배웠어?"
"scrupulous."
"파핳ㅎ 완전 뜬금없다. 근데 당신 그 단어 여태 몰랐어?"
"어. 몰랐어. 처음 들었는데 발음이 도대체 인간이 할 수 없는 발음 같아서 한 시간 정도 미국이랑 영연방국가들 사람들이 어떻게 발음하는지 들어보고 포기했다가 오늘 아침에 다시 듣고 감 잡았어."
"안 그래도 쇼 없을 땐 혼자 집에서 뭐 하나 궁금했는데 이렇게 사는구나...(웃음) 단어 하나를 한 시간 동안이나 팔 여유가 있고... 당신 답네."
"어. 나는 단어 하나를 오로지 재밌다는 이유로 한 시간 파는 삶을 살기로 했어. 내가 작년 까지는 너무 바빴잖아. 그것도 나름 좋았는데 지금은 이게 좋아. 당신도 너무 바쁘지 마, 알았지? 그리고 나 요새 물구나무서기(headstand) 연습 중이거든? 재밌어 죽겠어."
어둑해질 무렵에야 레드락 캐년 스테이트 파크(red rock canyon state park)에 도착했다.
오로지 별에 진심인 사람들로 조용히 북적이는 곳으로, 각 스팟마다 돌 언덕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이웃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남편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캠핑장.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고 주변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새카만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는데 당장이라도 내 얼굴로 후드득 떨어질 것 같은 별들이 빼곡히 하늘을 채우고 있다. 까만 바탕에 별이 있는 게 아니라 별 바탕에 까망이 이따금 보이는.
남편과 나는 편안한 자세로 선베드에 누워 온몸에 힘을 빼고 별을 바라본다. 욕계에 누운 몸이 점차 사라지며 색계를 거쳐 무색계에 닿으려는 찰나, 갑자기 양치를 안 했구나 싶다. 욕계로 다시 돌아온다. 그래, 양치를 해야지. 양치하고 다시 봐야지!
양치를 시작했더니 세수도 해야지 싶다. 끓인 물을 흰 타월에 묻혀 얼굴을 꼼꼼히 닦아내고 이것저것 찹찹 발랐더니 팔다리도 닦고 싶어 진다. 그래. 내 팔다리도 귀하니까. 다시 물을 끓여 전 과정을 사지에 반복한다. 빨리 씻을 줄 모르는 나는 여기까지 다다르자 거의 한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침내 내외 양면으로 별을 바라볼 준비를 마치자 멀리서 남편이 미세한 소리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얼른 달려가 남편을 깨운다.
"일어나! 자면 어떡해! 10시부터 점점 별 더 진해진단 말이야!"
"(눈 비비적거리며) 별은 아까부터 진했어. 그리고 나 삐졌어."
"엥? 왜 삐져? 나 씻는데 오래 걸려서?"
"어. 이런 광경을 놔두고 씻는데 한눈을 팔다니... 당신 실망이야."
평소 삐짐을 잘 표출하지 않는 남편이 웃겨서 나는 바로 사과하고 옆에 누웠다.
마리아 마르타 이야기가 생각났다. 예수님이 마리아가 분주한 세상사를 잊고 예수님 말씀에 집중하는 모습을 칭찬하시고, 잡다한 일처리를 하느라 산만한 마르타를 책망하신 일. 지금 시점의 나는 마리아도 마르타도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됐지만 예전의 나는 마리아스러웠고 남편은 마르타적 인간이었다.
함께 10년 정도 살다 보니 남편이 내가 되고 나는 남편이 되었다. 잠을 이기지 못한 뉴 마리아는 곧 텐트로 들어갔고 나는 혼자 누워 빈틈없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텐트 안에 남편이 자고 허공엔 별이 총총하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여섯 살 무렵일 것이다.
비 내린 저녁, 엄마손을 잡고 아스팔트 도로 가장자리를 걷고 있었다. 시커먼 땅바닥에 비친 가로등 빛의 파편을 멍하니 바라보며 걷던 날. 엄마손은 안전했고 불빛은 충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