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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Sep 27. 2023

물구나무서기

후폭풍




물구나무서기를 해야겠다 생각한다. 난데없이 솟아오른 이 욕망의 정체를 요리조리 살펴본다. 왠지 이것은 인간이 추구해 볼만한 고귀한 일 중 하나로 생각된다.


새 욕망에 정품 판정을 내린 나는 최대한 목표에 천천히 도달하기로 한다. 어차피 도달이 목적이 아니므로 행위 자체가 주는 기쁨에 집중한다. 연습하는 모습을 찍어서 어디에 쓸데없이 힘을 주는지, 각도나 호흡은 어떤지 등을 살피고 동작을 수정해 나간다.


'어? 이건 목뼈가 구부러진 채 너무 오래 있었네?' 싶은 장면이 보였다. 목을 꺾으면 안 되는데 뒤로 구를까 봐 나도 모르게 정수리가 아닌 이마로 체중을 버티고 있었던 것.


그 동작 후로 원인 모를 치통이 시작되었다.


치통은 신체 통증 중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으로 (두통과 식은땀, 구토감 동반)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통증 앞에 두려움이 훅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치통을 느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통증은 사적인 언어다.


나의 우울과 너의 우울이 다르듯 나의 치통과 너의 치통은 다르다. 치통이 대수롭지 않은 남편은 '어, 내가 치과 예약할게!' 정도로 내 고통을 바라본다. 공감 부족이라기보다는 자기에게 별일 아닌 통증이기에 부인도 그렇겠거니 하는 것이다. 내게 치통은 아주 무섭고 큰일 난 상황인데도 말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사건으로 인해 내 안의 통증에 대한 정신적, 물리적 반응이 변했음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민 후 달라진 환경이 그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충분한 햇볕을 받으며 매일 걷다 보니 제정신이 들면서 내 안에 욕망이 지나치게 많음을 보았고, 그 중 대다수는 내 욕망이 아님을 깨달았다.


걸을 때마다 남의 욕망을 길바닥에 버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것 남의 것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3년 정도 했더니 내가 살아야 할 내 삶이 서서히 드러났다. 단순하고 아름다웠다. 바쁘게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 따위에 쓸 시간은 없었다. 매일 은은한 고양감이 지속되었고 자잘하게 달고 살던 통증들이 사라졌다.


그러다 평온한 나의 일상에 오랜만에 찾아온 치통. 오랜만이라 당연히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항상 세트로 올라오던 구토감이나 식은땀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통증이 더이상 무섭지가 않았다. 그냥 아플 뿐이었다. 


아픔은 아플 일이지 두려워할 일이 아닌 것이다. 스스로 듣기에도 웃긴 말이었지만 기대치 않은 통증 완화 효과가 있길래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픔을 그대로 바라봤더니 '어떡하지! 큰일 났네!'가 자동 스킵되었다. 어떡할 것도 없고 큰일 날 것도 없었다.




뭐든 미루는 일이 없는 남편은 벌써 치과 예약을 잡았다.


"우리 집 바로 옆옆옆 집이야! 걸어서 50초 걸려. 무섭다고 참지 말고 꼭 가! 알았지?"


내 내면의 변화를 알리 없는 남편은 아직도 내가 치과 무서워하는 사람인 줄 알고 노파심 가득한 얼굴로 당부했다. 치통을 통해 새로이 얻은 내 몸에 대한 앎을 조만간 이 사람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큰 관심을 보일 것 같진 않지만 나는 내게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 공지하는 것을 좋아한다.


더 이상 치과가 무섭지 않지만 여전히 귀찮긴 하다. '50초'라는 하찮은 허들을 통과해 낼 것인가. 과연 내일의 나는 치과에 가 있을 것인가. 나 혼자 귀추가 주목된다.




친구가 사준 옥방아. 마늘 하나 넣고 찧을 수 있다. 깨도 빻아먹고 호두도 한알 넣으면 딱 깨기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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