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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Oct 02. 2023

단순하고 아름다운




"이건 좀 인종차별 아니야? 어떻게 전화받으면서 진료를 할 수가 있어?"


내 치과 진료 소감을 들은 아시안계 친구들이 몇 마디씩 거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내가 인종차별을 당했는지 성차별을 당했는지가 따위가 궁금하지 않은 부류다. 그저 인간은 누구나 조금만 방심하면 미숙함이 드러난다는 것에 경각심을 갖고 살뿐이고, 대부분의 차별은 서로의 사정을 몰라 생기는 불가피함으로 바라본다.  


물론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존재하고, 나는 그들의 차별을 규탄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인종차별과 그럴 의도가 없는 사람들의 자잘한 무지를 구분할 필요는 있고, '이거 지금 차별인가?' 싶을 때마다, 나부터 얼마나 상대방의 사정에 무지한지 살펴봄으로 내 건강을 챙긴다. 자기 연민에 잠식된 사람은 스스로도 타인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대부터 해외 경험이 많았던 나는 고전적인 것에서 미묘한 범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종차별에 노출되었고, 스스로 허락하지 않는 한 타인이 나에게 상처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허락'은 남이 나에게 상처를 가하도록 놔둔다는 의미가 아니라, 누군가가 내게 무례하건 말건 그걸 상처로 규정하는 결정권자는 나라는 의미다.


우리에겐 그럴 힘이 있다. 내게 그럴 힘이 있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그 힘이 강화되고 자기에 대한 앎이 단단해진다. 남의 말을 경청할지 튕겨낼지가 보이고, 단순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기 쉽다.


인종적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때마다 스스로를 그냥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아시아인'으로 보는 경향성이 생길 수 있고, 그럴수록 삶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많아진다. 물론 사회적으로 피해의식이 생길만한 큰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고 그런 상황을 결코 가벼이 여기는 건 아니지만, 그로 인해 일상적 차원에서 끊임없이 부정적 감정을 재생산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다.




치과의사가 핸드폰을 진료실에 들고 왔을 때, 나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 가볍게 의견을 피력했고,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인지하고 즉각 수용했다. 내 눈에 그녀는 그저 치과 운영하는 할머니일 뿐이었다. 거기서 만약 친구 말처럼 '진료실에서 통화를 하면서 진료를 보다니, 이건 아시아인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말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할머니들은 자유롭게 선을 넘나드는 특징이 있고, 나도 할머니가 되면 저럴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물론 치과에서는 의사 대 환자로 만나는 것이지만 나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그냥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그게 더 있는 그대로의 현실 같기 때문이다.




"흠... 이렇게 가로로 똑 끊긴 어금니 뿌리가 다시 붙을 가능성은... 아마 예수님도 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예수님을 이런 맥락에 이용하는 유대계 할머니.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자기 가족이 어릴 때부터 이용해 왔다는 패서디나에 있는 치과를 소개해줬다.


"아마 거기서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나도 잘하지만… 사실 나도 거기 치료받으러 가거든. 리퍼럴(referral) 써 줄 테니 꼭 가봐요."




글이 다소 무거운 감이 있어 마무리는 노랑 버섯. 좀 더 커봐야 알겠지만 chicken of the woods로 추정 됨. 치킨맛이 난다고 한다. 좀 더 크면 사진을 또 올려보겠다
산책하다 주은 패러디에 관한 문집. 안 주으려다 서문에 "문집 선별 과정에 있어 '역사적 의의'와 '웃김'을 예외 변수로 허용"했다는 말을 보고 그냥 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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