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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Nov 24. 2023

사막성 두통


오늘은 미국 땡스기빙이에요. 저는 지금 하루종일 열심히 전을 부치는 중이고 이따 남편 이모네에 갈 예정인데요, 어제 사막에 갔다가 하루종일 재밌게 놀고 밤에 사막성(?) 두통이 와서 죽을 뻔했거든요. 지금 두통이 사라져서 어찌나 행복한지 어제 제가 본 풍경을 몇 개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와 요론 짧은 일기를 남겨봅니다.


세상 모든 두통 없는 상태에, 건배!




시원한 바람에 속아 땡볕을 망각한 채 풍광에 넋이 나간 두 사람.


깔깔대며 돌아다니다 까마귀 소리 흉내내기 대회도 하고(‘까악 까악'이런 거 아님. 진짜 새소리 내기임) 기암괴석도 으쌰으쌰 올라가서 야호하고 노래도 부른다. 노래할 때는 사방으로 서로 망을 봐주고, 암석을 타다 마땅히 발 짚을 곳이 없을 때는 남편의 신체 일부를 딛고 서거나 먼저 뛰어 올라가 있는 그의 손을 로프 삼는다. 이렇듯 남편은 야외에서 굉장히 유용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평소보다 에너지 소모가 컸음은 차에 타서야 깨닫는데, 시트에 앉으면 속으로 푹 꺼져 들어가 이대로 영영 다시 못 일어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집에 도착할 무렵 슬슬 시동 걸리는 시간차 두통은 사막에서 누린 내추럴하이와 반대 방향으로의 상쇄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고, 어떤 진통제도 듣지 않으며 오롯이 하루를 속절없이 당해내야 끝난다. 뭐 이런 정확한 계산이 다 있나 싶은, 마치 우주가 '너네들 깔깔대면서 완전 재밌었지? 이것도 당해봐.' 하며 심드렁하게 태극의 조화를 시전 하는 모습.


다 알면서 한 번도 안 당해본 사람처럼 또 꾸역꾸역 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대체 왜 그러냐고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사막은 나를 사랑한다.

그래서 두통이 두렵지만 자꾸 가게 된다.


태양을 가린 미어캣.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의 대화가 생각나는 <좌>,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무지개구름 <우>
물 열심히 마시는 남편 <좌>, 오아시스 주변의 수염 안 깎은 야자수 <우>
가만보면 두 개의 물통 샷인 <좌>, 협곡을 통과하는 나 <중앙>, 켜켜이 다른 재질의 모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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