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겨울방학 기념 동료들과 하는 팟럭에 간다고 하여 동글동글 귀여운 김치전을 구웠다. 매울까봐 양파도 쫑쫑 썰어 넣고 나름 핑거푸드 느낌 나게 예쁘장하게 굽는데 냄새가 이미 끝났길래 실실 웃으며 너른 접시 바닥에 초록색 케일 들판 만들고 퐁신한 바닥에 미니 김치전을 하나 둘 올리기 시작하는데,
또 내가 각도에 민감하니까 모든 동글동글이 동일하지 않았기에 각도 조절도 요리조리 해 가며 커다란 네모 캔버스에 다 담고 나니 로스코(Mark Rothko)가 생각났다.
그래서 혹시나 이분이 오늘 내가 만든 '케일 들판 위의 김치전'을 그리신 적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없네. 비슷한 건 있었지만.
남편한테 작품을 쥐어주며 작가노트를 펼쳐 들고,
"이건 '조용한 들판 위의 김치전戰'이야. 작품명은 일부러 소문자야. 내가 몰래 심어 둔 모든 맛을 알아채길 바래 은은한 단맛까지도. 참고로 케일까지 먹는 사람은 뒷맛이 별로겠지만 작자의 의도를 심도 있게 파악한 거야."
"This is called 'kimchi chaos over the seemingly peaceful green'. You know I don't like capitalizing the title of my works, right? anyways. I hope you and your fellow teachers would get the idea by noticing all the hidden notes, especially the sutble sweetness. Those who end up eating the greens are the winners because they did so despite the expectedly aweful aftertaste."
들고 가는 남편 뒷모습 의기양양.
이바지음식 들고 가는 줄.
남편이 나가고 조용해진 집을 최대한 누린다.
김치전은 헌 김치로 구워주고 나는 새 김치 먹는다.
김치통을 열어서 커다랗고 예쁜 이파리 하나를 떼어서 그것 보다 더 크고 예쁜 접시에 쫙 펼쳐 담는다. 접시에 발림으로 소실되는 양념을 안타까워하며 김치 양념 한 숟가락 휘휘 추가로 덮어주고, 포크와 칼을 들고 하양과 초록 부분을 세로로 재단하여 포크로 돌돌 말아 밥 위에 올려 먹는다.
하양과 초록이 한입에 동시 입장했으면 좋겠고, 손 베리기는 싫은 마음이 낳은 기행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빨리 돌아온 남편.
아니, 말은 바르게 하자.
그냥 그렇게 느끼는 나.
"이번 김치전 난리 났어. 뭐 넣고 했어? 김치만 넣었어?"
그냥 김치전이 아니라 '조용한 들판 위의 김치전戰(kimchi chaos over the seemingly peaceful green)이라서 그런 것이라 하고픈 마음을 꾹 누른 채 이렇게 말했다.
"양파 넣어서. 맛있드나? 다행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