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ing
여러분! 오늘은 각자 준비한 마분지로 모자를 만들 거예요. 준비됐죠?
도파민이 솟구친다. 준비물 사러 갈 때부터 두근두근 댔지만 선생님의 저 한 마디는 내 심장에 불을 질렀고, 책상을 손바닥으로 탕탕치며 표현하고픈 기쁨을 만개한 웃음으로 무마한 채, 선생님 설명이 끝날 때까지 마분지를 만지작 거렸다.
친구들이 평면적 모자를 오리는데 열중한 사이, 나는 두 가지 컬러를 오려 붙여 실제 착용 가능한 야구모자를 만들었다. 이런 것들이 내게는 쉬웠다. 사물을 상상하면 도면이 보여서 그대로 오려 붙이면 그만이었다. 이런 작업이 주는 희열은 어린 마음에도 내가 살아있다는 게 뭔지 알게 했고, 신은 다른 방면으로는 내게 재주를 주시지 않았다. 특히 수학적으로는 금치산자였다.
그 후로 나는 내게 이런 희열을 주는 것들에 집중했는데, 서예와 영어가 그랬다.
인사동에서 한참 글씨를 쓰던 대학생 시절, 한 스님이 내 글씨에 '내림'이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안다. 내 삶은 글씨를 써야 평탄하다. 내 안에 글씨가 있기 때문이다. 계속 꺼내서 생명을 입혀줘야 무탈하게 삶이 굴러간다. 내가 지금 무탈한지 안 한지는 눈만 감아보면 알 수 있다.
'응. 무탈하네.'
'흠. 이상하네.'
뭔가 이상함이 올라오면 나는 내 안의 생명을 밖으로 낳지 않고 가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애석하게도 나의 내림은 글씨뿐 아니라 모든 불처럼 뻗어나가는 행위에 닿아있었다.
나는 내가 태어난 곳에서 자꾸만 불처럼 뻗어나갈 팔자였기에 영어가 탑재되었고, 글씨 써서 사람들과 나누어야 했기에 자꾸 길 위에 앉아있었다.
내 나라에 살지도 못하고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그 안에서 계속 여행을 해야 하고, 집에 있을 때에도 가만있으면 안 되고 계속 밖으로 긴 산책을 해 줘야 한다.
낮에 해를 보며 긴 산책 하자니 돈을 포기하고 퇴사하는 수 밖에 없길래 퇴사했다. 나는 걸어야 내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돈도 좋지만 일단 내가 나인게 중요하다.
나도 귀찮다. 가만있는 게 좋다. 그럼에도 ‘걸은 나’는 ‘안 걸은 나’보다 항상 더 나은 인간이 되어있기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실제 길바닥에 앉아있지 않아도 길바닥 역할을 하는 공간들이 많다. 나는 브런치라는 길바닥에서 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행복하고 감사하다.
나는 내가 브런치를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 벌써 일 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너무 재밌다. 왜 재밌는지 나도 모른다. 계속 모르고 싶다.
그래서 이 감사함을 더 크게 나누고 싶어서 유튜브도 시작했다. 구독자도 조회수도 뭣도 없지만 행복하다. 선생님이 마분지로 모자 만들어보라고 했을 때처럼 책상을 탕탕 치고 싶다.
https://youtu.be/uaHr9-4lCQE?si=5agdUQf9QimEuNUl
나는 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하고 싶은 걸 맘 편하게 하면서 사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가.
당장 그럴 상황이 안된다면 그럴 상황에 곧 닿기를 기도한다. 뭔가를 이루겠다는 생각 없이 그냥 단지 재밌다는 이유로 뭔가를 해 보시길. 남한테 해 되는 거 아니면 적당히 철판 깔고 질러보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