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사러 가는 길
"나 궁금한 게 있어."
쌀이 똑 떨어져서 아닌 밤중에 H-Mart 가는 길, 멍하니 신호등을 바라보는데 남편이 말을 건다. 궁금한 게 잘 없는 사람인데 뭐가 궁금할까 내가 더 궁금해지는 순간, 남편이 말을 이어간다.
"당신 변했어. 사실 한 2-3년 전부터 느꼈는데, 혹시 무슨 계기가 있었어? “
"어떻게 변했는데? 변하기야 항상 변하지."
"음... 뭔가 당신한테 속마음 말하기가 편해졌어."
"나는 당신한테 주구장창 속마음 말해왔는데, 당신은 안 그런 적도 있었어??"
"어. 이런 반응. 나는 이런 반응이 아직도 힘들어. 나는 속마음 말하기 편해졌다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있는데 당신은 항상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한 단계 위를 원해. 표현 방식이 많이 둥글어져서 고맙긴 하지만."
"아니...(얼굴에 미소 유지) 나는 당신한테 뭘 원하는 게 아니야. 그냥 여태 몰랐던, 당신이 나한테 지니고 있던 거리감을 지금 이 순간 발견했을 뿐이야." 까지만 말하고 2절 3절은 삼간다. 웃는 낯에 평온한 목소리가 관건이다. 말에 뭐가 담겨있는지 보다 그 말의 진동수(frequency)에 민감한 사람임을 알고 나서 고안한 대처법.
가끔 남편의 저런 맨생각을 마주할 때면 흠칫할 때가 있는데, 예전에는 그 흠칫의 모양새를 남편에게 입체적인 1,2,3절의 형식으로 읊어주곤 했다. 혹시나 알아먹을까 봐. 혹시는 역시였고 언젠가부터 나는 1절은 입으로, 2절 3절은 속으로 읊는 사람이 되었다.
'아, 이거구나. 남편이 내가 변했다고 말한 지점이.'
물론 상태가 안 좋을 때는 2절 3절을 또 입으로 한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그랬다고 해서 막 새삼스레 실망하거나 그러진 말자. 그냥 바로 다시 정신 차리면 된다. 끊임없이 상태 관리를 하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짐승성(중생성)에 휘둘리는 게 인간 아닌가.
2절 3절 안 하게 된 이유는 사실 나도 모른다. 어찌 됐든 그걸 안 할 수 있는 능력이 기적적으로 배양되어 양자 간 평화시대가 도래했다. 나의 절제미 넘치는 1절이 끝나고 남편의 말이 이어진다.
"그렇구나. 나 당신이랑 이렇게 편하게 얘기하고 싶었어. 항상 그러고 싶었는데 당신은 어떤 얘기를 하건 뚜렷한 입장을 좋아하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말할 의욕이 꺾였던 거 같애. 나는 안 뚜렷한 사람인데, 그래도 괜찮지?"
.
그래도 괜찮지??
'이건 또 뭐야. 당연히 괜찮지 안 괜찮으면 어쩔 거야. 아니, 너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그 의미를 정말 모르는구나?'하고 2절 3절이 올라왔지만 또 참고,
"당연하지. 나 당신 좋아해. 몰랐어?"
하고 말았다.
어차피 저게 결론이다.
남편은 난데없는 고백에 한참을 깔깔거리더니, 웃다 남은 미소를 입꼬리에 걸어두고 신난 손으로 좌회전을 그린다.
나는 남편이라는 인간을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하고 있다. 이 관계를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는 사랑하는 일에 '이해'가 그렇게까지 필수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지성이 직관의 하인이듯, 그냥 사랑해 버리면 이해가 가건 말건 큰 의미가 없다. 귀찮은 거 잘 못하는 나는, 이해라는 지난한 스텝을 밟지 않고 그냥 큰 마음 내서 옴팡 사랑해 버리는 게 더 편해서, 나 좋자고 그냥 그렇게 한다.
‘그래도 괜찮지?’라는 말.
자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달라는,
매번 큰맘 먹고 했을 저 말이
이제야 들려서 너무 미안하다.
잡박했던 나의 귀가
나이 들면서 조금씩 정순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