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어제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내가 좋아하는 할아버지 얼굴이 떴어. 어딘가 모르게 자코메티 조각상을 연상시키면서 굉장히 여러모로 내 취향인 버트런드 러셀이 턱 하니 떠 있길래 예의상 클릭을 해 줬는데...
1950년대 국제 정세, 자기 할아버지가 나폴레옹 제위 시절 영국에서 국회의원 한 이야기 등등을 신나게 하시길래 '야... 참 말 잘한다... 이 할배 매력의 끝은 어디인가.' 하고 있었지. 그러다 갑자기 말이야, 내가 평소 매력 없다고 생각했던 한 사상가에 대해 소심하게 품고 있던 내적 가려움을 벅벅 긁어주시는 게 아니겠어?
철학적 스탠스는 차치하고, 나는 그냥 마르크스란 사람이 참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거든? 글에서 풍기는 인간적인 매력 말이야. 이를테면 쇼펜하우어, 매력 쩔잖아. 일단 너무 웃기고. 이 사람을 만나면 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낼 것 같다는 확신이 들고 (호옥시나 쇼펜하우어 대한 저의 사심이 궁금하신 분 밑에 링크 참조. 그로 빙의하여 쓴 글).
https://brunch.co.kr/@accigraphy/23
각설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A Conversation with Bertrand Russell’이라는 제목의 인터뷰로 1952년 Romney Wheeler가 러셀의 집에서 진행했고요, 아래는 마르크스에 관해 러셀이 한 말입니다.
하나의 철학으로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싶다면 말이야, 그것은 '따뜻한 곳'에서 비롯되어야 해. 마르크스는 '따뜻한 곳'으로부터 영감 받지 않았어. 그는 노동 계급의 행복을 추구하는 척했지만, 사실 그가 원했던 건 부르주아 계급의 불행이야. 그런 부정적 마음에서 비롯된 증오적 요소가 재난을 빚은 거지.
제가 요즘 이런 데 꽂혀 있거든요:
지금 내게 와 있는 이 느낌이 어디서 왔나.
사랑인가 두려움인가.
inspiration인가 desperation인가.
저는 inspiration 상태에 있을 때는, 자체로 따뜻하고 무한한 존재로 느껴지는 반면 desperation 상태에 있을 때는 뭐라도 해서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저- 우주 변방으로 떨어진 느낌이 든단 말이죠. 저는 마르크스의 창작들이 어딘가 우주 변방에서 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거예요. 우주에 변방이 어딨냐고 하신다면 뭐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게 포인트는 아니고요, 러셀의 말이 '맞다 안 맞다'를 떠나서 제가 가려웠던 지점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러셀 얘기가 나온 김에 부언하자면, 그는 스스로를 논리적원자론자(logical atomist)로 칭할 만큼 자명한 소리 하길 좋아했는데, 그런 자가 마르크스를 까기 위해 꺼내든 칼자루가 고작,
아니, 무려
‘따뜻한 곳(kindly feeling)'이라는 게...
하아... 이 사람 진짜 철학자네 싶었죠.
아니, 자코메티 조각상처럼 세상 뾰족하게 생긴 사람이 말이야... 저런 소리 하면 내가 무너져? 안 무너져?! 엉!?
그래가지고오... 오늘은 또 뭔 카인들리 필링스런 창작을 해 볼까... 아침부터 커피 홀짝거리며 거실에서 홀로 충만하였으나, 남편이 독감 걸려 오늘 휴가를 냈답니다. 그래서 남편 데리고 산책을 가야겠다... 오늘의 카인들리 필링 창작 재료는 남편이다… 싶어 가지고, 글씨 쓰고 싶은 욕망을 접어둔 채 옷을 또 주섬주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