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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Jan 08. 2024

스승이 없을 때

물어보는 곳




글씨를 쓰기 전에 붓을 먹에 쿡 찍어서

종이에 그냥 뚝뚝 흘려볼 때가 있다.


스승이 없으니 중력에게 시범을 보여달라 청하는 것이다.


똑똑. 토도독. 툭툭.


한 끝에서 떨어졌어도 방울마다 개성이 있다. 그 짧은 새에도 각자 고유의 질량과 물성, 낙하 속도를 매번 여실하고 성실하게 드러낸다. 찰나의 삶을 여한 없이 살아버린 검은 왕관들을 가만 보노라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허허...
이것 참 굉장히 뭔가
더하거나 뺄 게 없게 생겼군.
아주 그냥 부럽게 생겼어.



이들은 낙하하던 순간의 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죄다 독자적인 실체가 있는 모양새. 이런 모양을 흉내 내려고 붓 들고 손으로 움직였다간 더하거나 뺄 것 투성이인 흔적만 남기게 된다. 물 모양은 여간해선 따라 하기 힘들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중에 그나마 해 봄직한 것이 풍이다. 밀도가 낮을수록 구현해 볼 만하다. 그래서 풍은 손목에 힘을 0으로 맞추고 휘리릭 휘리릭 한 20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움직임을 얻었지만 먹방울 떨어지는 순간의 진실을 담아내 본 적은 아직 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약이 오른다.

먹방울처럼 순간의 진실을 살아내기를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 나도 그렇게 살아보기로 한다.


'나는 하루 중 언제가 가장 먹방울이지?'


아침.

아침에 별생각 없는 상태.

어! 이때는 나도 좀 먹방울이야.

먹방울 상태를 낭비하지 않도록 중얼중얼 혼잣말을 녹음한다. 가끔 운 좋으면 그 중얼댐 속에 먹방울 한 두 개 포착된다. 그 생각에 살을 붙여 다시 녹음을 해 본다. 이렇게 한 지 보름 정도 지났는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재미가 있다. 


순간의 진실로 범람하는 삶을 살고 싶다.  




최근에 비가 좀 오더니 또 새싹 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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