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陰一陽
얼마 전 나는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김치를 담갔다. 고춧가루 대신 마른 통고추를 갈아 넣었기 때문인데, 잊을만하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씨들의 향연에 김치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김치에 붙은 노란 씨들을 하나씩 발라내면서 김치를 끝까지 먹었다. 맘에 들지 않는 맛을 끝까지 먹는 사람이 아니지만 끝까지 먹었다. 요즘의 나는 이런 사람이다.
포만감이 주는 안락은 이내 노곤함으로, 곧 나태로 흐르는 특징이 있었기에 나는 음식을 습관적으로 남기곤 했던 것이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 나는 괴테가 자전거 안장에 앉아서 글을 썼던 이유를 공감하는 부류의 사람이었고, 나태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정진력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다. 정진력은 덕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친구들중에 덕후가 많은 편인데, 참고로 내가 해 온 가장 오래된 덕질 분야는 나다. 셀프덕질은 무엇보다 재밌지만 웬만한 인격자 아니고서는 자의식과잉으로 흐르기 때문에 친구 사귀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오랜 친구를 소중히, 새로운 친구를 열린 마음으로. 그러면 그들이 내가 얼마나 이상한지 알려준다.
김치를 끝까지 먹었더니 기분이 좋았다. 김치와 나 사이에 간극이 줄었고, 어딘가 모르게 떳떳해진다.
떳떳한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침마다 거르지 않고 떳떳하게 떠오르는 태양이다. 그 태양을 또 떳떳하게 밀어내는 달이다. 어차피 달도 그 전날 태양에 떳떳이 밀렸기 때문에 서로 떳떳하다. 그래서 나의 부침도 떳떳하게 겪어낸다.
밥을 끝까지 다 먹는 사람으로 거듭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참고로 밥 끝까지 다 못 먹는 유전자는 아버지로부터 왔는데, 내 것도 아닌 걸 털어내다니 뿌듯해 미칠 지경이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다른 유전자 중에 갑자기 성질을 확 내는 것도 있었는데 그것도 어느 정도 털었다. 나는 털었는지도 몰랐는데 남편이 털렸단다. 최측근의 말이니 믿어봐야지. 이러다 어느 날 다시 성질을 확 내더라도 실망하지 말자고 호시절에 미리 다짐을 찹찹. 그래야 나중에 휘청거림이 덜하니까.
남편은 밥을 절대 남기지 않는 바리새파였는데 최근에 밥을 슬슬 남기기 시작했다. 남편이 밥을 남기는 행위는 내가 남기던 행위와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남긴 밥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계란 하나 터트려 볶음밥 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