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CCI Apr 08. 2024

왕복 7,506km

total solar eclipse




멤피스


그래서 개기일식을 보러 왔는데, 동남부에서 잘 보인다고 해서 어제 테네시주 멤피스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밤새 이동하여 지금은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Great Smoky Mountains National Park). 아직 나흘이 남았지만 목적지인 아칸소(Arkansas)까지 조금씩 움직이며 돌아볼 예정이다. 지난주까지 시댁에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대륙 반대편이라, 게다가 캘리포니아에서 시차도 세 시간이나 나다 보니 여행보다는 고행하는 기분이 든다.


멤피스에서의 저녁은 인상 깊었다. 맛도 좋았지만 사람들이 신기했는데, 오랜 기간 실버레이크 스타일(목소리와 표정이 과장된 스몰토크)에 익숙해 있다가 어딘가 본말이 구색을 갖춘 친절을 마주하자 안정감이 들었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던 서버는 우리 여정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에 갈 거라고 하자 거기서 바로 돌아온 동료가 있다며 그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호명된 남성은 할 말 가득한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입이 열리기도 전에 그의 목소리와 말투가 가늠되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발걸음으로 많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 진-짜 예뻐. 아니, 근데 내가 원래 에어비앤비를 싫어한단 말이야. 근데 나 이번에 거기 갔다가 인생 에어비앤비 만났잖아. 냉장고에 막... 커피에 넣어 먹으라고 홀밀크랑 크림이랑 예쁜 도자기 주전자에 따로 다 담겨있고, 잼이랑 이런 거 진짜 너무 귀엽게 담아놓고 (핸드폰 사진 보여주느라 바쁜 손), 너네들이 언제 여기 다시 올지 모르겠지만... 제발 다음엔 이 에어비앤비에 머물러 줄래? 뒷마당에 그네도 있고 언덕이라 뷰도 너무 좋은데 또 가격도 싸고 진짜 나 너-무 좋아가지고 집에 안 오고 싶었다니까?! 아, 그리고 국립공원 안에 폭포 보러 갈 거야? 이거 봐봐, 너무 좋지? 아니 근데 개기일식은 어디서 볼 거야? 이번에 해랑 달이랑 완전 겹쳐져서 4분 넘게 있다는 거 들었어? 4분 넘는 거 미친 거 아냐?"


슬슬 집중력을 잃어갈 때쯤, 해가 달에 가리는 시간이 4분이 넘는다는 말을 듣자 눈이 번쩍 뜨였다.


"4분이 넘는다고? 아니 나는 잠깐 겹치고 말 줄 알았는데 4분? 마이... 오... 마이!"




베리베리 스모키


그래서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에 이틀 있다가 지금 다시 이동 중이다. 이름처럼 이틀 내내 층층이 스모키한 하늘로 덮여 있어 제대로 된 관광(한 지역의 빛을 보는 것)이 되지 않았다. 공자는 한 지역을 관광하는 방법으로 그곳의 음악을 듣고, 한 인간의 성정을 보기 위해 악기 연주를 시켰다고 한다. 봄이라고 꼬물꼬물 땅에서 솟아오른 귀여운 것들에 스모키 조명이 내려앉아 서운했지만 싸리눈 내리는 소리로 관광을 대체했다. 눈발들이 여기저기 '토도독- 탁탁-' 건드리며 디제잉을 했는데, 장르는 디엔비(drum and bass)였다. 미국 말고 일본, 타쿠야 나카무라류의.


숙소에 돌아와 TV를 켜자 'Visit, California!' 광고가 떴다. 하루종일 꾸무리한 하늘만 보다가 쨍한 우리 동네를 보자, 내가 맨날 보는 것들이 이 동네 사람들에겐 이국적이라는 게 새삼스러워 혼자 조용히 한번 웃었다.




맘모스한 귀여움


윗부분까지 글을 쓰고 자고 일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맘모스 케이브 국립공원(Mammoth Cave National Park)이었다. 혼침한 구름으로 뒤덮인 곳을 벗어나 빛의 세계로. 밑에 보면 고사리 사진이 두 개 있는데 최애입니다. 봄 됐다고 고사리 땅에서 기어 올라오는 거 정말 너무 귀엽지 않나요? 두 손가락으로 좍좍 확대해서 봐주시면 귀여움이 커질 것입니다. 그러라고 신이 엄지와 검지를 주신 게 아닌가 합니다. 동굴이 본캐인 국립공원이지만 동굴 사진은 하나도 없습니다. 동굴은 고프로로 찍었는데 지금 이동 중이라 전송할 길이 없어 유튜브로 올릴 예정입니다.



미국 온천


저러고 또 정신 차리고 일어나 보니, 핫 스프링스 국립공원(Hot Springs National Park)에 와 있더라고요. 클린턴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라고 합니다. 제가 가 본 국립공원들은 모두 자연에 있었는데 이곳은 각기 다양한 온천장을 갖춘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어 색다른 매력이 있더군요. 갑자기 말투가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되어 버렸네요. 흐름에 맡겨 봅니다. 길거리 곳곳에 뜨거운 분수대가 있어서 남편과 손 넣고 오래 참기 시합을 했습니다. 저는 5초 이상 견디기 어려웠지만, 남편은 손에 굳은살을 장착한 덕에 자꾸자꾸 이겼습니다.




미나리


결국 아칸소(Arkansas)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영화 <미나리>의 배경이 되었던 곳인데요, 목가적인 분위기를 상상했지만 막상 와 보니 도시와 자연미가 잘 어우러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현재 머물고 있는 도시(Little Rock)가 그렇다는 말이고요. 아칸소의 전체 모습이 어떤지는 잘 모릅니다.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풍경은 한적하고 광활한 시골이었어요.



그래서 이제 다섯 시간 후에 개기일식을 보게 되는데요, 어제 빗발이 살짝 날려서 걱정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늘은 청명합니다. 비행기 타고 차 타고 왕복 7,506km의 이동을 감행한 고행의 결말이 과연 어떠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두구두구두구두구. 알비백.



작가의 이전글 빛을 기록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