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賁
요즘은 익숙한 책들을 다시 보고 있는데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재밌어서 어이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 그래서 어이없을 때마다 기록을 하는데, 주로 통역할 때 쓰는 리걸패드(표지 없는 노란 줄무늬 노트패드)에다 주제별로 하고 있거든? 내가 막 주제별로 뭘 정리하고 그런 걸 안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개기일식을 보고 나서 사람이 조금 변했어. 크게는 말고 조금. 근데 조금 변하는 것도 크게 변하는 거랑 별반 차이는 없는 거 같아.
일식과 정리의 연관성을 묻는다면 나는 무어라 말할지 모르겠어. 그냥 그때를 기점으로 변해버렸어. 사고 같은 거야. 다른 변수도 있는데 내가 눈치 못 채고 있는 것 같아서 단정은 못 짓겠어.
그래가지고 '오늘도 책을 보다가 어이없을 일이 있을 텐데 노트가 없어 어쩌지...' 하고 있는데 캘리그래피 행사 끝나고 남은 종이 뭉텅이가 보이길래 일단 손에 쥐어봤어. 요리조리 보다가
반 접고 자르고
또 반 접고 자르고
한번 더 접고는 나란히 구멍 두 개 뚫어 공책을 만들었지. 제목은 좀 더 두꺼운 이합장지에 써서 오려 붙이고, 표지는 '나랏말싸미듕귁에달아' 종이가 있길래 뭔가 표지스러워가지고 그걸로 하고. 더 꾸몄다간 다꾸 하는 어린이가 될 것 같아 그쯤에서 그만두었어. 요즘 내 트렌드는 백비(白賁: 꾸밈이 본질을 압도하지 않음. <주역 상경> 중)거든. 나는 유행에 민감해. 내 안에 지금 어떤 바람이 부는지, 뭐가 패권을 잡았는지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 보고 있으면 재밌어.
접고 자르고 접고 자르고, 이게 뭐라고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몰입이 되는지, '전생에 접고 자르는 일이 업이었나.' 싶었다니까. 백정이었을지도 몰라. 한 번씩 닭 손질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 칼날이 뼈와 뼈 사이로 우아하게 지나갈 때, 뭔가 그 동작이 자연스럽다 느낀 적이 있어. 서예가 원래 칼 들고 하는 거거든. 붓은 나중에 나왔고 칼을 가지고 돌에 세기는 게 원형이야. 물론 원형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나는 그렇다고 배웠어. 서예 하는 백정이었나 봐.
요지는 뭐냐면 종이를 접고 자르고 제목 써서 오려 붙이고, 이 과정이 정말 재밌었다는 거야. 이제 앞으로 리걸패드 살 일이 없어졌다는 말이야. 글씨 쓰고 남은 자투리 종이로 자꾸 이렇게 만들면 되거든. 퇴근한 남편한테 공책 보여줬더니 자기도 만들어 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