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조금 넘게 글씨를 쓰면서 다양한 형태의 재롱 잔치(전시, 협업, 퍼포먼스, 강좌)를 해 오고 있는데 요즘 제일 재밌는 건 사람들이 원하는 걸 써 주는 일이다.
어제는 100명 정도의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게 없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나도 물론 그들에게 없는 한 끝이 있다. 재밌다. 타인은 지옥이 아니라 재밌는 것이다(물론 지옥인 타인도 존재한다. 공자는 비인匪人과는 말을 섞지 말라고 했다).
"예쁜 거 써 주세요." 하는 사람에겐 캔버스에 '예쁜 거'라고 적어 준다. "아무거나 써 주세요." 하면 나는 정말 '아무거나'라고 갈긴다.
'아무거나'를 받은 상대는 자신이 원하던 걸 받았다. '원한다'는 말은 영어로 want인데, 알수록 미묘한 단어인데다 그 중심 의미 중 하나가 '없다'이다. 없는 부분을 글씨로 써서 건네주면, 마치 그들은 잃어버렸던 레고 조각을 찾은 어린이처럼 함박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