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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Nov 15. 2022

취향과 성향의 충돌

크고 작은 껄끄러움

자연 탐험을 좋아하는 우리는 가까이 멀리 잘 돌아다니는 편인데 이번 주말에는 하바수호수(Lake Havasu, Arizona)에 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부지런한 남편은 일과를 이미 시작한 상태였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던 나는 남편에게 발코니 문을 활짝 열어달라 부탁했다.


그러자 남편은 여기가 LA인 줄 아냐며 자기는 추워서 히터를 틀려던 참이었다는 것이다.


남편은 자기가 좀 차갑게 말했다고 느꼈는지, 발코니 창을 조금 열고 히터를 켜는 게 어떻겠냐고 내게 조심히 물어보았다.


나는 에너지 낭비가 마음에 걸렸으나 에너지를 좀 넉넉히 쓰더라도 부부 관계 보전이 중한 것 같아 그렇게 하자고 타결을 보았다.


이렇듯 나와 남편의 세상이 겹쳐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자잘한 조정은 함께하는 시간에 비례해 하루에 열 번에서 스무 번 정도 일어나고, 조정에 실패하면 껄끄러움이 발생한다.

껄끄러움 (그래피티체_roundtip), 2000 X 1000px, Procreate 작업, ACCI CALLIGRAPHY 2022

엊그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여행하느라 꼬박 이틀을 함께했으니 대략 마흔 번 정도는 서로 껄끄러울 뻔했던 것이다.


껄끄러움은 잔잔한 파도부터 큰 파도까지 다양한데 잔잔한 파도의 예는 다음과 같다.


호텔 커피의 맛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는 여행 시, 커피 내리는 도구를 가지고 다닌다.


방에서 둘이 커피를 내리며 이런저런 쓸 때 없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방 벽에 걸려있던 그림에 시선이 갔다.


바다를 전망하고 있는 비치하우스에 나른한 흔들의자가 놓여져 있는, 무해한 그림이었다.


나는 그 그림을 보자마자 호크니(David Hockney)가 떠올랐다. 무해함에 대항하기 위한 무의식의 발로였다.


나는 무해한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마침 그 그림이 물을 생명력 없이 흐리멍덩하게 해 놓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물의 물질로서의 속성과 그것을 둘러싼 모든 상징과 기호를 사랑한다. 그 그림은 물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물을 표현한 것 같았다.

스플래쉬 (그래피티체_roundtip), 2000 X 1000px, Procreate 작업, ACCI CALLIGRAPHY 2022

다행히 호크니의 물이 내 마음을 장악하자 나는 곧 평정을 되찾았고, 나는 방금 내 속에서 발생한 이 무해한 그림 평정 사건을 남편과 공유해야겠다는 욕망에 차올랐다.


나는 일단 이 얘기를 있는 최대한 생동감 있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호들갑을 떨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래야 남편이 귀를 열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가 호들갑을 떨며 무언가를 설명하면 살며시 귀를 닫는 특징이 있다.


"(호크니 수영장 물 튀기는 그림 보여주며) 자기야, 이 그림 봐봐. 이 사람은 추운 영국에 살다가 캘리포니아 와서 살았는데, 수영장이 달린 집들이 마치 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대! 그래서 이렇게 수영장을 많이 그렸다는 거야! 신기하지? 호크니 그림이랑 지금 이 벽에 있는 그림이랑 너무 반대 편에 있는 것 같지 않아?"


내가 말을 뱉으면서도 너무 답정너에 호들갑이라 느낀 순간, 남편은 의외의 대답을 선사했다.


"어, 좋네. 나도 이 사람 마음에 들어.

초현실주의인가?"


나는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이건 초현실 말고 입체파에 가깝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또 올라왔지만 이 발언이 급 쓰잘때기 없이 느껴진 나는


" 나도  몰라. 근데  사람 작품 좋지?"정도로 마무리했고, 남편은 말을 이어갔다.


"근데 나는 호크니보다는 이 호텔방 그림이 더 좋아."


남편의 이 무해한 발언은 순식간에 나를 남편과 백만 마일 떨어진 곳으로 내동댕이쳤다. 물론 '취향 문제지 이게 뭐라고!' 하면서도 내동댕이는 쳐졌다.


정신줄을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그래도 우리가 그림에 대해서  정도라도 얘기가 무리 없이 오고  것을 축하하기로 했다.


남편은 밀덕이고, 이과 계열 남자고, 스포츠를 좋아한다.


이런 사람이 호크니 그림을 보고 초현실을 떠올린 것만 해도 큰 성취고, 군사 장비에 관심 없는 내가 수륙양용기가 뭔지 알게 된 것도 큰 성취다. 이건 어제 남편과 패들보드를 타다가 알게 된 것이다.


나는 하나도  궁금했지만, 그리고 남편이 수륙양용기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물건은 한낱 예쁜 비행기로 나에게 기억되었겠지만, 하필  시간대에 하바수 호수에 얼쩡대고 있었던 수륙양용기마저 우리 부부의 역사로 담아두기로 한다.


나는 사실 또 그 수륙양용기를 보고 군산복합체 얘기를 꺼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참았다. 밀덕이 싫어하는 주제이기에 나는 지구의 안녕보다 우리 부부의 안녕을 먼저 헤아리기로 한다.

말을 삼키는 사랑 (그래피티체_roundtip), 2000 X 1000px, Procreate 작업, ACCI CALLIGRAPHY 2022

반추해보면 내가 이렇게나 많이 말을 삼키는구나 싶다. 남편은 더 많이 참겠지. 항상 나보다 더 참는 사람이니까.


 정도로 잔잔한 껄끄러움에 대한 소고를 정리하 껄끄러움은 다음 시간에 이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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