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CCI Dec 17. 2022

통역사 섭외에 관한 공공연한 비밀

정부 각 부처 산하에 국제협력을 도모하는 준정부 기관이 많이 있는데, 나는 주로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의 해외인사 초청사업 통역을 했다. 자리 한번 메꾸러 갔다가 8년이나 하게 된 일이다. 이래서 참 인생은 알 수가 없구나 한다.




나는 통역사 중에 튼실한 분을 만난 적이 별로 없다.


아, 딱 한 분 기억난다.

그분은 국회의장 통역을 하고 있었는데 시종일관 웃는 낯으로 능수능란하게 모든 단어에 생명을 부여하며 명료한 딜리버리를 구사했다. 보통의 통역사들은 표정이 경직되어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분을 보면서 통역 실력을 키우기 전에 근력부터 키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체력은 집중력과 직결되는 문제).


그분 말고는 다들 어딘가 살짝 빈혈기가 있어 보여야 군중 속에서 처음 뵙는 통역사를 찾을 때 '아 저분이 통역사구나!' 싶었다. 마침 나도 딱 그런 외양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살찔 겨를이 없는, 밥 먹으면서도 통역을 해야 하는(통역사들은 오/만찬 통역을 '밥통'이라 부른다) 피 마르는 세계라서 그런지 다들 어딘가 곤두서 있었고, 웃는 낯은 잘 없었다.


참고로 지금 내가 말하는 영역은 '정부사업 수행통역'의 영역이고, 통역의 영역은 국제회의에서 관광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정부사업의 수행통역에 섭외되는(적어도 내가 겪은) 통역사들은 보통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전문 통역사들인데, 흔히 '하우스 통역사'라고 해서 특정 기관에 소속되어 통역하는 분들보다 수입이 월등히 높았다. 이 부분은 사실 통역사 나름인 부분도 크게 작용하는터라 나중에 다시 다루어 보겠다.




통역사들을 섭외하는 각 부처 담당자들은 에이전시를 통하거나 직접 섭외를 했는데, 나는 통역을 시작하고 1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양 측 모두와 친분이 생기게 되었다.


그 무렵 통역사 섭외와 관련해서 깨닫게 된 업계 비밀(이랄 건 없지만 상당히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사업 담당자들은 통역 실력이 살짝 밀리더라도 같이 일하기 편한 사람을 선점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그 섭외 풀(pool)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실력은 어느 정도 인증이 된 것이기에, 실무 회담이 아닌 의례적 예방이 대부분인 정부 초청 사업에서 통역사 간의 미세한 실력차는 차라리 통역 스타일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만큼 결정적 요인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전체적 사업의 무사한 진행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사업 담당자와 통역사의 케미가 중요했다.


나는 그런 통역사에 가까웠다.

실력이 출중한지는 모르겠으나 함께 일하기 편한 통역사.

지금 생각해도 나는 순전히 운으로 그 풀에 들어가 명랑한 태도로 살아남은 케이스다.




세월이 지나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되어 재외공관에서 한국문학을 현지에 홍보하는 사업을 4년 정도 맡았다.


한국 문학을 미국 현지에 소개하는 행사이기에 교차언어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통번역사가 필요할 때마다 내 머리에 번뜩 떠오르는 사람은 통역을 기똥차게 잘하지만 같이 있기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 실력은 평타 일지라도 함께 일하기 편한 사람이었다.


상대를 편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무서운 능력이다.





#통역 #통역사 #통번역 #수행통역

작가의 이전글 연말은 로드트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