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Kick]은 청춘의 다른 이름이다. 아파서 청춘이 아니라 인엑시스이기 때문에 청춘이었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스케이트 보드, 선글라스와 권총 혁대, 반항적인 눈빛으로 웅크려 앉은 줄무늬 티셔츠 남성, 그리고 언뜻 발 킬머를 닮은 금발의 마이클 허친스. 작품에 뿌려질 평단의 찬사를 예상이라도 한 듯 별 네 개를 사이에 둔 밴드 이름과 앨범 제목까지. [Kick]의 첫인상은 꽤 복합적이었다. 과연 어떤 음악일까? CD를 플레이어에 걸고 몇 초 뒤 나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직감했다. 이미지는 곧 음악이었다. 갱 오브 포와 조지 마이클이 만난 듯한 “Guns in the Sky”의 그 강렬함 앞에서 내가 더 이상 무슨 의심을 했을 것이며 무얼 더 가늠하려 들었겠는가. 물론 이 앨범의 진정한 충격과 시작은 다음 곡부터였다.
쟁글대며 손짓하는 펑키 기타와 존 패리스의 딴딴한 드럼 비트가 모든 걸 집어삼키는 순간, “New Sensation”은 시작됐다. 공식적으론 누가 들어도 흥청망청 파티 송이지만 밴드의 메인 송라이터인 앤드류 패리스의 환상적인 건반 운용과 브라스로 포인트를 준 커크 펭길리의 감각, 그리고 카일리 미노그의 연인이었던 마이클 허친스의 가사는 이 곡과 이 음반을 음악으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만들었다. 이런 완벽한 그루브, 확실히 살면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백만 달러를 더 줄 테니 호주로 돌아가 다른 앨범을 만들어오라고 한 아틀란틱 레코드가 ‘흑인들이 좋아할 만한 앨범’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는 “Devil Inside”는 한 술 더 떴다. “What You Need”로 톡톡히 재미를 봤던 전작 [Listen Like Thieves]로 자신감을 얻은 커크가 “모든 곡을 싱글 컷 할 수 있는 앨범”이라는 바람을 현실로 빚어낸 지점에 이 곡과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 트랙 “Need You Tonight”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한 앨범에 수록된 잇단 3곡에서 80년대 최고의 기타 리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셈인데 당시 그걸 처음 들은 내가 느낀 당혹스러움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혹자가 “Need You Tonight”를 듣고 프린스와 키스 리처즈를 떠올린 건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Funk와 로큰롤은 정말 이 밴드의 심장이고 숨통이기 때문이다.
모국의 선배 밴드 러브드 원스(The Loved Ones)의 곡을 커버(“The Loved One”)한 모습도 장관이었다. 까랑까랑한 록 기타가 곡을 리드하곤 있지만 느슨한 슬로우 록 리듬으로 여유로운 알앤비 스타일을 지향한 이 곡에서 조니 로튼처럼 노래하는 마이클의 퍼포먼스는 꽤 인상적이었다. 이 느낌은 히트곡 “Never Tear Us Apart”에서 자신들의 오리지널로 다시 한 번 재연된다. 부기 피아노와 스냅핑거로 흥을 돋우는 “Mystify”, 모타운 사운드라 해도 무리 없을 “Kick”, 다시 Funk 리프를 날름대는 “Calling All Nations”까지 ‘흑인 음악’의 기운이 이어진 뒤 내가 가장 좋아하는 “Tiny Daggers”의 키보드 리프가 나오면 앨범은 슬슬 뒷정리를 시작한다. 시작된 마감은 결국 인엑시스가 AC/DC와 함께 호주를 대표하는 ‘록밴드’라는 암시요 증명이다. 버릴 곡이 없어야 하고 마지막 곡까지 긴장을 늦추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가 명반의 전제로서 통용될 수 있다면 이 앨범도 때문에 명반이다. 모든 수록곡들의 싱글화. 커크의 바람은 바람에서 그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