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헨리와 글렌 프레이, 그러니까 이글스 앨범 크레딧에서 ‘헨리-프레이(henley-frey)’는 어떤 상징과 같았다. 마치 존 레논과 폴 맥카트니의 그것처럼, 둘은 각자의 작곡력도 특출했지만 특출난 둘이 하나가 될 때 명곡들은 비로소 마법처럼 돋아났었다. ‘One of these nights’와 ‘Desperado’가 그랬고 이 앨범에 있는 ‘Wasted time’과 ‘The last resort’가 또한 그랬다. 돈 펠더가 두 사람 밥상에 수저를 얹은(?) ‘Hotel california’는 아마도 그 절정이자 정점이었을 것이다.
1976년 12월8일 세상에 나온 [Hotel California]는 이글스의 모든 앨범들 중 가장 많이 팔린(전세계로 3,200만장이 팔려나갔고, 그 중 1,600만장은 미국 안에서 소비되었다) 작품이다. 그 유명한 ‘Hotel California’를 비롯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만 내리 세 곡을 올려놓은 이 앨범은 그러나 플리트우드 맥의 [Rumours]에 밀려 이듬해 열린 그래미어워드 선정 ‘올해의 앨범’까지는 되지 못했다.(<롤링스톤>은 자체 선정 '위대한 앨범 500'에서 이 앨범을 37위에 랭크시켰다.) 제임스 갱에서 이글스로 둥지를 옮긴 조 월쉬는 돈 펠더와 함께 일렉트릭 기타 솔로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극적인 릭(licks)을 타이틀 트랙에서 선보였고, 글렌과 함께 밴드를 이끈 돈 헨리는 드럼과 보컬, 작곡을 넘나들며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었다.
조 월쉬의 블루지 기타 리프를 앞세운 ‘Life in the fast lane’은 이후 림프 비즈킷도 테마를 갖다 썼을 정도로 강렬했고, 글렌 프레이가 메인 보컬을 맡은 소프트 록의 정수 ‘New kid in town’의 톤 메이킹은 [On the Border] 앨범부터 이글스와 연을 맺어온 빌 심치크(Bill Szymczyk)의 실력을 가장 멋있게 보여준 대목이다. ‘Take it to the limit’를 부른 베이시스트 랜디 마이즈너는 따뜻한 포크록 넘버 ‘Try and love again’을 홀로 써내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했으며, '신임' 조 월쉬는 건반(키보드)과 타악기(드럼)를 동시에 다루는 만능 뮤지션 조 비탈(Joe Vitale)과 함께 분위기 있는 팝 발라드 ‘Pretty maids all in a row’를 써내고 부르며 다른 멤버들의 수고를 덜어주었다.
오늘 아침, 모터헤드의 레미와 ‘스타맨’ 데이빗 보위에 이어 또 한 번의 청천벽력 같은 부고를 접했다. 이글스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글렌 프레이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인은 류마티스성 관절염과 폐렴, 그리고 극심한 궤장성 대장염 등 합병. 안타깝게도 장 수술 뒤 회복 중에 그는 끝내 눈을 감았다고 한다. 글렌 프레이가 없는 이글스. 이 말은 브라이언 메이만 남고 프레디 머큐리가 없는 퀸의 운명을 이글스가 이어 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글스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물 [History of the eagles]에서도 강조되었듯, ‘Take it easy’를 작곡한 글렌 프레이는 이글스를 주목받게 한 인물이다. 오랜 친구인 밥 시거의 말처럼 그는 사실상 밴드의 리더였고 주축이었다. 리듬 앤 블루스와 소울, 블루그래스(Bluegrass Music)와 컨트리, 블루스와 포크를 압축해 소프트 록(Soft Rock)이라는 형태로 현대 대중음악 팬들의 귀를 호강시켜 준 이글스에는 언제나 돈 헨리, 그리고 글렌 프레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독수리(eagle)는 날개 하나를 잃었다. 다시 하늘을 지배하기는 커녕 지상에서 절룩거릴 확률이 높은 이글스의 운명. 지난해 가을 솔로 앨범 [Cass County]를 내고 자신의 음악 인생을 되돌아 본 돈 헨리(그는 "글렌 프레이는 내 인생을 바꾼 사람"이라고 말했다)를 보며 나는 그 운명을 섣불리 긍정했던 듯 하다. 글렌 프레이. 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