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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적었다

by 김성대
애플TV+는 '케이팝드'의 사회자로 싸이와 메건을 내세웠지만 이들은 사전 녹화된 영상으로 등장하는 카메오였다. 메인 MC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 손수정이다


100초 티저 영상은 화려했다. 라이오넬 리치와 메건 디 스탤리언의 총괄 프로듀싱. 사회자 싸이. 카일리 미노그부터 보이즈 투 멘까지 팝 전설들과 있지(ITZY), 에이티즈 등 케이팝 그룹들의 콜라보. 8회 에피소드로 레전드들의 히트곡을 케이팝화(KPopped) 하겠다는 야심찬 아이디어는 분명 세계 팝 팬의 구미를 당길 만 했다. 하지만 기획과 실행의 수준이 늘 비례하는 건 아니다. 두 팀으로 나눈 케이팝 걸그룹과 보이밴드에 레전드 한 두 명이 들어가 48시간 안에 기존 팝 히트곡을 케이팝 스타일로 재해석 하는 일은 기대만큼 짜릿하지 않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지적대로 높은 스타 파워에 비해 연출은 형식적으로 느껴졌고, 맥락이 거세된 케이팝 스타와 팝 스타의 만남은 미스매치에 가까웠다. 화려한 티저 영상으로 미끼를 던진 애플TV+는 케이팝의 정황을 반쪽만 이해한 듯 보였다. 소문난 잔치에 젓가락을 가져갈 곳은 딱히 없었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 '케이팝드'의 규칙은 단순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팝 가수들이 반으로 나눈 케이팝 그룹에 합류해 자신의 대표곡을 케이팝풍으로 편곡하고 그 곡에 케이팝식 안무를 입힌 뒤 무대에 오른다. 그 사이 한국(정확히는 서울)을 방문한 팝 레전드와 아이돌 그룹들의 문화 체험 영상, 안무 짜는 모습이 추가되고 누가 더 잘 했는지 게임의 판정은 스튜디오 관객들의 몫으로 간다. 정확한 평가 기준은 없지만 그들은 어느 쪽이 더 케이팝처럼 보이고 들리는지를 따졌을 것이다. 각 에피소드는 이 서사를 반복한다. 그리고 반복된 서사는 다소 작위적이다.



에이티즈 멤버들과 부채춤을 춘 카일리 미노그, 바닐라 아이스를 아이스 링크에 데려간 케플러, 롯데월드타워 ‘서울 스카이’에 올라가 굳이 무서워한 케샤와 제이오원(JO1) 멤버들, 테일러 데인이 비빔밥 속 우렁이를 달팽이로 여기며 불편해 하는 모습. 명상에 관심이 많은 보이 조지가 사찰을 방문한 것 정도를 빼곤 대부분 콜라에 밥 말아먹는 듯 어색한 설정이다. 도대체 왜 넣었는지 모를 이 공허한 문화체험은 문화체육관광부 아니, 거의 서울시 홍보 영상으로까지 느껴진다. 서울 외 전국 유서 깊은 장소들은 외국인의 좁은 시선 앞에서 그렇게 통째로 누락됐다. 케이팝의 케이는 한국(Korea)의 약자임에도, 해외에서 한국은 곧 서울로 인지한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정도면 케이팝이 아닌 에스팝(S-Pop)이라 불러도 무방해 보인다.

차라리 저 자리에 연습 과정을 더 넣었으면 좋을 뻔했다. 안무를 배우느라 식은땀을 흘린 티보즈(티엘씨)의 모습 같은 것 말이다. 애플TV+ 제작진은 박진영이 기획한 ‘골든걸스’의 아기자기한 디테일을 참조해야 했다.


화려한 티저 영상. 부실한 본론. '케이팝드'는 용두사미에 가까웠다.


사이먼 코웰이 황금시간대 TV에서 겁에 질린 평범한 이들의 희망과 꿈을 짓밟던 나쁜 시절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케이팝드’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 마찰과 드라마, 가끔은 실패한 고음도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가디언의 저 지적은 불편할 정도만 아니라면 약간의 갈등, 긴장이 ‘케이팝드’에 들어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다. 그리고 케이팝이란 게 안무만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 거기에만 초점을 맞춘 것도 의아하다. ‘케이팝드’에서 곡의 어레인지 과정은 완전히 증발해버린다.


어색하고 작위적인 건 팀 조합도 마찬가지다. 패티 라벨 등 왕년의 스타들은 케이팝이 세계적인 유행, 현상이라면서도 그 팬은 자신의 자식이나 손주들이라고 말한다. 저들의 의례적이고 막연한 칭찬에 케이팝 그룹들도 아이콘들의 위상에 대해 막연하게만 이야기한다. 그들은 저들의 음악을 잘 모르거나 아예 모르는 듯 보였다. 예외라면 리아(ITZY)가 스파이스 걸스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는 고백 정도일까. 프로그램이 형식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건 저 경직된, 서로의 막연함 속에서 잉태됐다.



BTS와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함께 나왔으면 어땠을까. 샘플링을 통해 만난 아이브와 수잔 베가의 만남을 주선했다면? 자기 무대의 ‘청소년 관람가’ 등급을 고민한 케샤는 ‘쇠맛’을 표방하는 에스파와 더 어울리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멤버 평균 나이 23살 걸그룹과 81세 노장 알앤비/솔 가수를 한 무대에 세우는 것 외에도 시도할 거리는 차고 넘쳤다. 이는 아마도 섭외, 예산 등 제작 여건 문제였을 거다. 그렇다면 다시 고민하거나 제작을 조금 늦췄어도 될 법 했지만 애플은 그러지 않았다. 단호하게 밀어붙였고 결과물은 모호했다. 그나마 거둔 ‘케이팝드’의 성취라면 90년대 이전 팝 팬들의 향수를 충족시킨 정도겠다. 또한 한국인이 아니어도 케이팝 그룹을 만들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는 제이오원(JO1)에 대한 비평적 소개도 의미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제이오원의 등장은 한국인 케이팝 그룹이 한국을 소개하리라는 프로그램 콘셉트에 엇박을 일으키긴 했다. 특히 래퍼 이브(Eve)가 일본말 ‘야바이(위험해)’를 애써 발음하려는 모습은 실소를 자아냈다. 아마도 제이오원의 소속사 최대주주가 프로그램의 공동 제작업체(CJ ENM)였기에 이뤄진 섭외였을 테다. 이처럼 케이팝드에선 이야기 대신 비즈니스가 보인다. 그것도 아주 일관되게. 걸그룹 빌리(Billlie) 멤버들이 싸이와 카메오 사회자로 출연한 메건에게 삼양 불닭볶음면을 먹어보게 하는 장면은 그중 압권이다.


보이 조지가 어눌한 한국어로 ‘Karma Chameleon’을 부르는 걸, 그 곁에서 케이팝 걸그룹 스테이씨 멤버 절반이 춤추는 모습을 꼭 봐야 했을까? 스파이스 걸스 멤버 두 명이 케이팝 그룹 있지 멤버 세 명과 ‘Wannabe’를 리믹스하려는 시도를?


‘케이팝드’를 “일방적인 문화 실험”으로 결론 내린 매체 롤링스톤의 질문이다. 적어도 나의 대답은 ‘아니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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