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나무 <삶의 향기>
수도권 교육대학교에도 합격했지만, 면접을 보러 갔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진주로 가야겠다는 순간적인 확신을 했어요. 정확히 설명하긴 어려운데, 버스 창밖으로 보이던 진주의 오후가 참 좋았어요. 도시를 감싸며 흐르는 남강과 풍경들이 제 맘을 편안하게 해 주었죠.”
세 번째 앨범을 내고 했던 긴 인터뷰에서 권나무는 나에게 말했다. 벌써 6년 전 일이다. 네 번째 앨범이 나오는데 6년이 걸렸다는 얘기다. 나는 이 앨범을 진주성을 걸으며 들었다. 진주에서 녹음하고 다듬은 것이라서가 아니다. 진주성에서 남강을 바라보며 이 앨범을 감상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매일 저녁 나서는 산책길의 우연. 그렇게, 나도 모르게.
권나무는 초등학교 교사다. 의도한 건진 모르겠지만 가수의 직업은 수수한 앨범 표지에도 드리워있다. 거기엔 이런 단어들이 보인다. 삶, 현실, 치유, 나눔, 여기, 소중함, 곁, 보살핌, 그리고 사랑. 이 모든 걸 어우르는 앨범 제목은 ‘삶의 향기(The Fragrance of Life)’다. 사실 그것은 지난 작품들에서도 일관되게 어루만져온 정서다. 권나무 음악은 늘 삶을 바라보았고, 음악은 지금도 삶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 꽉 찬 열세 트랙은 ‘잃어버린 게 너무 많아서’라는 곡의 구성처럼 그 삶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돈다.
‘잃어버린 게 너무 많아서’가 들려주듯 권나무의 음악은 마음속에 쌓인 불편함과 이물감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모습을 갖춘다. 때문에 그의 가사는 ‘어디에서도’와 ‘잠든 너를 보고 있으면’의 무심함에만 머물지 않는 번뜩이는 성찰을 이따금씩 토해낸다. 본인 말대로 그건 상상보단 현상에, 그 현상의 정서 가까이에 있다. 노래의 두 마음이랄까. 권나무의 노래는 바로 거기에서 날개를 편다.
권나무는 1집이 "그때 만들 수밖에 없었던 앨범"이라고 말했다. 2집은 1집에 흐르던 정서들에 스스로 느낀 반감의 표현이었다. 3집은 1, 2집의 연장선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권나무로서 가장 만들고 싶었던 앨범을 남기고자 한 의지였다. 그렇다면 4집은 어떤가. 내 귀엔 관조하고 수용했던 1집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감정의 윤회로 삶을 구체화시켜 보이겠다는 듯, 권나무 4집은 선언하고 방출했던 2집의 파랑 대신 '노래가 필요할 때'와 '어릴 때'로 반짝였던 1집의 초록 위에 들꽃처럼 눕는다. 쉽고 단순하되, 여물어 굳건한 심지 같은 것. 4집은 청년 권나무와 아빠 권나무 사이에서 그 애틋한 중용의 싹을 끈질기게 뿌리내린다.
권나무는 진주에서 “진짜 사춘기”를 겪었다고 한다. 뒤늦게 폭발한 자아, 온갖 복잡한 상황들이 기다리던 그곳에서 그는 힘껏 방황했다. 불안과 위험의 시기였고, 미친 듯 에너지를 쏟아부은 도시였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음반에선 거짓말처럼 ‘청춘’이 흐른다. 가수가 불태운 청춘이 머무른 곳. 나는 진주의 진주성을 걸으며 권나무가 피워 올린 ‘삶의 향기’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