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궁금했다. 내가 10대 때부터 좋아했던 오아시스를 지금 10~30대들도 좋아하는 이유가. 그들 중 일부는 데뷔작 ‘Definitely Maybe’가 나왔을 때 옹알이를 했거나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두 삶, 두 시대”를 하나로 묶은 오아시스의 인기는 국적도 없다. 그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다시는 안 볼 듯 돌아섰던 갤러거 형제가 기적처럼 뭉친 일은 그 현상에 따른 숙명처럼 보인다. 잘파 세대는 왜 그들에게 열광할까. 이유를 살펴봤다.
전화위복
오아시스의 두 번째 앨범을 대표하는 세 곡 ‘Wonderwall’, ‘Don't Look Back in Anger’, 'Champagne Supernova'는 영국인들에겐 애청곡을 넘어 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저 세 노래는 지금도 영국 어딘가에서 열리고 있을 결혼식, 장례식, 파티, 축구 경기장, 펍과 나이트클럽, 학교 행사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2009년 8월 28일, 노엘 갤러거는 이 관심을 역사로만 남기려는 듯 밴드를 나가며 오아시스를 해체시켰다. 잘파 세대가 오아시스를 받아들인 건 역설적이게도 그때부터였다. 밴드를 접었다손 음악까지 접을 생각은 없던 갤러거 형제는 각자 솔로 투어를 통해 새로운 세대를 만났다. 가령 2017년 리암 갤러거가 맨체스터 리츠The Ritz에서 치른 솔로 공연과 이후 투어에서 3집 'Be Here Now'의 타이틀 곡을 들려주었을 때, 2022년 넵워스 8만 5천 관중 앞에서 ‘Roll It Over’를 불렀을 때 관객들의 평균 나이는 눈에 띄게 내려가 있었다. 그건 형 노엘이 2024년 'Stand By Me' 싱글의 비사이드 곡인 'Going Nowhere'를 공연 세트리스트에 포함시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덜 유명한 곡들로 갤러거 형제가 세월을 가로질렀을 때, 오아시스는 세대를 가로질러 더 유명해졌다. 얼마 전 오아시스를 재결성해 치른 16년 만의 공연에서 노엘은 'The Masterplan'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은 우리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20대 여러분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오아시스의 해체는 오아시스의 전화위복이 됐다.
음악
잘파 세대가 들은 오아시스 1, 2집은 나 같은 엑스 세대가 접한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또는 '화이트 앨범(The Beatles)'과 같았다. 마음먹고 팝록을 듣기 시작한 나에게 비틀스가 30년 전 시대를 주름잡은 글로벌 슈퍼스타였듯, 오아시스는 잘파세대에게 그런 존재일 테다. 재밌는 건 오아시스가 실제 '90년대 비틀스'로 불렸다는 사실. 음악 수준, 존재감, 모두 그랬다. 비틀스 음악을 비틀스만 들려줄 수 있었던 것처럼, 오아시스 음악도 유일무이였다. 과거 세대가 열광한 ‘Supersonic’, ‘Live Forever’, 'Cigarettes & Alcohol'에 지금 세대도 열광하는 이유란 그래서 결국 '훌륭한 음악'이다. 그 열광이 비교적 덜 알려진 ‘Falling Down’, ‘Little by Little’, ‘Let There Be Love’, ‘Gas Panic’까지 옮아간 것 역시 엑스 세대가 비틀스 대표곡들을 접한 뒤 'Little Child', 'Baby's in Black', 'Love You to', 'Sun King'으로 귀를 확장해 나간 일과 본질에선 같다. 단, 오아시스의 음악은 비틀스보다 더 보편적인 정서를 다뤘다. 한 명 한 명의 마음속에 천천히 자리 잡은 비틀스에 비해, 오아시스는 집단 속으로 지진처럼 급습했다. 비틀스가 쓸쓸하고 은은한 모닥불이었다면 오아시스는 삽시간에 번져나간 들불이었다. 노엘은 영국 잡지 믹스매그(Mixmag)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에 대해 곡을 쓴 게 아니다. 너에 대해서도 쓰지 않았다. 우리에 대해 썼다." 존 레넌이 그토록 부르짖은 사랑과 평화도 인류의 당위였지, 우리의 당위는 아니었다.
가사
어느 시대든 세상 모든 청(소)년들은 공감과 위로를 원한다. 제발 강요 말고 설교도 말고 내 말 좀 들어달라는 게 그들의 기본 바람이다. 당신 말 알겠으니 어서 날 이해해 줘, 이젠 날 바라봐줘. 이것이 저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매사에 불만이나 의문을 가질 확률이 높아 비관과 절망에 빠져들기도 쉬운 세대인 만큼, 저들은 긍정과 희망을 갈구한다. 바로 그들 앞에 오아시스가 나타난 것이다. 그래 알았어, 우리가 들어주고 대신 말해줄게. 이름 따라간다더니, 오아시스는 그렇게 90년대 청춘들을 지나 2020년대 청춘의 정서적 갈증까지 적시는 진짜 오아시스가 되었다. 아이들은, 또 청년들은 'Morning Glory'의 그늘보단 'Some Might Say'의 낙관에 귀 기울이며 자신들을 위로해 주고 채워주고, 공감해 주는 오아시스의 우주에 너나없이 몸을 던졌다. 유리처럼 민감한 그런 잘파 세대에게 2017년 맨체스터 아레나 테러 참사 이후 저항과 연대의 송가가 된 'Don't Look Back in Anger'가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는 따로 긴 설명이 필요 없을 터다.
태도
'Definitely Maybe'는 1994년 발매 당시 영국에서 가장 빨리 팔린 데뷔 앨범이었다. 또한 그것은 태도의 앨범이기도 했다. 예컨대 'Bring It On Down'과 'Cigarettes & Alcohol'은 청년의 반항을 온전히 담은 곡이었다. 이처럼 '우리'를 노래한 갤러거 형제에겐 이기적이게 보일 정도로 확고한 자기 존중과 확신도 있었다. 둘은 솔직하고 대담한 발언으로 늘 미디어의 중심에 섰다. Z세대 문화평론가 리안나 크루즈의 말대로 그들에겐 필터가 없었다. 저들이 내뱉어온 말들은 모두 가식과 위선의 대척점에 선 진심과 자신감의 발현이었다. 건방져 보였지만, 그래서 더 멋있었다.
2006년이었나. 오아시스가 한국에서 첫 공연을 하러 왔을 때 기자 자격으로 라운드 인터뷰에 간 적이 있다. 현장엔 리암은 없었고 노엘만 나온 상황. 리암이 함께 나오지 않은 이유를 물었지만 노엘은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답했던 기억이 난다. 리암은 그런 인물이었다. 공식 밴드 일정보다 비공식 개인 컨디션이 더 중요한 사람. 리암의 그런 거칠고 진솔한 모습은 사람들의 본능적 감정, 특히 잘파 세대의 보편적 기질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리암은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으로만 남고 싶어 했다. 형 노엘이라고 다를 리는 없다. 동생보다 더하면 더했다. 잘파 세대는 저런 형제의 자존감을 오만이 아닌 매력으로 보았다.
해서 2016년 오아시스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소닉'이 보여줬듯, “방탕한 청춘을 헤쳐나간 당당함”으로 요약되는 이들의 성공 스토리는 지금 청년들에게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갔을 법하다. 혹자의 말마따나 그 불협화음과 에너지를 지나 펼쳐진 마법 같은 현실은 그대로 잘파 세대에겐 영감이 되었다. 저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지켜온 오아시스를 단순히 과거의 유물로 치부하지 않고 지금 자신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존재로 받아들였다. ‘나’와 ‘내 생각’을 강박적으로 내세운 건 90년대 엑스 세대의 태도였지만, 오아시스 덕분에 그 태도는 2020년대에도 유효하다. 세대는 변해도 젊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 오아시스의 존재는 록 밴드의 태도가 문화가 된 사례다.
오는 10월 21일. 오아시스가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세 번째 내한공연을 펼친다. 'Oasis Live '25'로 이름 붙이고 지난 7월 4일 카디프 공연으로 출발선을 끊은 이번 재결성 월드 투어는, 2024년 8월 31일 티켓 판매를 시작해 곧바로 매진됐다. 특히 영국에선 엑스/밀레니얼 세대와 잘파 세대 간 티켓 경쟁이 치열했다고 전해지는데, 앞선 세대는 ‘Wonderwall’만 들을 거라면 15년을 기다린 자기들에게 표를 양보하라는 논리를 폈다고도 한다. 다양한 세대 팬층은 이번 내한공연에서도 볼 수 있으리라. 부모나 고모/삼촌을 통해, 틱톡을 통해, ‘슈퍼소닉’ 같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리고 형제의 솔로 투어를 통해 오아시스는 잘파 세대에게 '발견'되었다. 밴드는 그 과정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세대 경계를 허물었고 시대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오아시스는 부모와 자녀 사이 공통의 언어요 관심사다. 지금까지 이런 록 밴드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