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우리들의 발라드’를 보기 전 든 생각이다. 그 흔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겠거니 여긴 탓이다. 적당히 사연 있는 출연자들이 나와 부르거나 연주하고, 전문가들이 심사하고, 비범한 몇몇은 스타의 길로 들어서는 시나리오. 그럼에도, 흔한 줄 알면서도 저들이 ‘또’ 만든 이유는 그런 줄거리가 웬만하면 흥행하기 때문일 터다. 시청자 입장에서 처음 보는 얼굴들은 어쨌거나 참신하기에, 또 그들끼리 겨룬 끝에 이르는 당락과 순위는 어떤 식으로든 보는 이들에게 스릴과 감동을 안겨주니까. 더욱이 스포츠처럼 각본 없는 드라마여서 오디션 프로그램은 태생적으로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들의 발라드’도 딱 그 정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진 보편적 장점을 믿고 출발하는 듯 보였다. 그럭저럭 재미있다가 치열한 경쟁 뒤 1등이 탄생하면 축하하면서 조용히 막을 내리리라.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조금 달랐다. 시작부터 그랬다.
첫사랑에 가슴 뛰던 순간, 함께였던 발라드 / 내 인생 첫 도전의 순간, 위로였던 발라드 / 사랑을 꿈꾸던 어느 소녀의 방을 가득 채워주던 발라드 / 우리 모두의 인생에는 늘 발라드가 함께 있었다.
나는 저 도입부에서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를 보았다. 그것은 거대하되 숨죽인 국내 발라드 팬 층의 집단 기억을 건드려보겠다는 의지였다. 배우 차태현이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을 이야기한 것도, 크러쉬가 유재하의 데뷔 앨범 초판 LP를 매개로 ‘가리워진 길’과 고3 시절을 꺼낸 것도, 박경림이 이문세의 ‘소녀’를 예로 들며 중학교 시절 또래끼리 주고받은 카세트테이프 얘길 풀어놓은 것도 다 그 의지의 파편이었다. 프로그램 시작을 알린 저 다른 듯 통하는 발라드에 대한 정의들은 살아남거나 떨어지는 경쟁 이전에, 모두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음악을 여기서 한 번 꺼내보자는 제안이었다. 프로그램 제목이 ‘우리들의’ 발라드인 이유다.
물론 엄연한 오디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발라드'에도 제작 배경과 경연 규칙은 있다. 일단 심사위원이 150명이다. 음악 좀 들었다는 일반인 141명과 본편에서 예능을 담당할 연예인 아홉 명. 시청자들은 이들을 ‘탑백귀’로 인지한다. 자신들의 귀가 좋다고 반응하는 곡들은 어지간하면 차트 탑백(TOP 100)에 든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이 프로그램은 제작 의도에 맞춰 일반인 심사위원들 사연도 소개한다. 가령 발라드 없이 하루를 보내는 건 밥을 안 먹는 것과 같다는 18세 소녀 이정원은, 엄마 차 안에서 흘러나오던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를 듣고부터 이 장르에 빠졌다고 한다. ‘내 눈물 모아’는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작곡가 정재형이 쓴 노래이기도 하다. 이어 허진경 씨는 두 아이 태교를 발라드로 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 외에도 2천여 지원자 중 엄선된 141명에는 발라드를 편애하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전 직원, 발라드를 사랑하는 작사가 출신도 있다. 이들은 추성훈, 미미, 정승환, 전현무, 대니 구와 똑같은 한 표씩을 부여받아 행사한다. 한마디로 “집단 지성 오디션”을 표방한 것이다.
재밌는 건 그다음이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크게 유행한 이 장르를 2015년생 초등학생부터 최고령(?)인 26세 청년까지, 평균나이 18.2세 참가자들이 부른다. 그러니까 추억을 먹고사는 세대와 추억을 쌓고 사는 세대 사이에 발라드라는 다리를 놓아 시공을 오가겠다는 게 ‘우리들의 발라드’가 내건 포부다. 뉴트로의 정서로 실시간 청춘인 지금 청년층과 이대로 청춘을 포기할 수 없는 과거 청년들을 모두 포섭하겠다는 거다. ‘새 목소리’를 찾아 나서겠다는 의도, 즉 정재형이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을 부른 정지웅을 가리켜 말했듯 가능성 있는 ‘원석’을 찾는 일은 그러므로 이 프로그램이 오디션으로서 갖춘 구색에 가깝다. '우리들의 발라드'의 본질은 발라드의 매력, 발라드의 추억에 잠기는 일이다.
참가자들의 선곡도 다양하다. 1980년대 이은하부터 2020년대 임한별까지를 아우른다. 그 곡들을 대하는 141명 일반인들의 평가 기준은 알 수 없지만, 유명인들의 평가 기준은 ‘자기만의 해석’으로 보였다. 예컨대 원곡자인 이은하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을 부술 듯 소화했던데 비해, 송지우는 그 노래를 조용히 놓아주며 불렀다. 박상민의 야성이 매력점인 ‘하나의 사랑’도 민수현의 스산한 서정을 거쳐 거의 새로운 노래가 됐다. 마이크를 잡은 심사위원들은 이런 곡들에 감탄하며 합격 버튼을 눌렀다. 다만, 유명인들의 심사평은 보는 사람들에게 재미는 주되 당락 결정에선 무력했다. 취향(차태현)과 이론(정재형) 사이에서 팽팽한 저들의 심사 구조는 빅뱅의 ‘If You’를 고도의 기타 연주를 곁들여 부른 조은세 같은 실력파를 떨어뜨리는 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들의 발라드’가 갖춘 오디션 면모는 발라드의 공유, 공감이라는 프로그램의 핵심에 앞서지 못한다. 출연진의 평가가 딱딱한 심사평보다 따뜻한 감상평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도 그래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참가자 이준석이 공일오비의 ‘텅 빈 거리에서’를 가지고 왔을 때 90년대에 젊음을 보낸 심사위원들은 동전 2개(20원)를 놓고 수다를 떨었다. 이곳은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 보다 “우리들의” 추억이 더 중요한 자리인 것이다. 이야기는 참가자들의 선곡 이유에도 있다. 제주 출신 이예지는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부르기 전 그 노래를 알게 해 준 아빠의 운전하는 옆모습을 얘기했고, 스무 살 이민지는 엄마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애즈원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파격적인 선곡에 이은 반전의 실력으로 시청자, 심사위원들에게 똑같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예지와 다음 라운드 ‘죽음의 조’에서 만나리라 예고된 최은빈은 과거 악플에 상처받아 겪은 슬럼프를 털어놓았다. 그래서 ‘우리들의 발라드’는 치유의 공간이기도 했다.
음악의 힘은 위로와 추억이다. 음악은 듣는 사람의 아픔을 감싸주고, 듣는 사람을 들었던 그때로 데려간다. 여기서 시대나 세대 구분은 구차하다. 박경림이 ‘비처럼 음악처럼’을 듣고 말 한 대로 ‘우리들의 발라드’는 김현식의 포효가 박서정의 정화로 상쇄되는 세대 간 접점에서 비로소 꽃을 피운다. 2014년 곡임에도 故김광석의 고등학교 후배 이지훈이 부른 짙은의 ‘해바라기’가 세대와 상관없는 감동을 안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들의 발라드’는 고만고만한 오디션 프로가 아니었다. 거기엔 노래와 경쟁 이전에 사람이 있었고, 기억이 있었다. 심사를 위한 집단 지성만큼 중요한 추억 속 집단 경험이 상존한다.
하나만 지적하자면, 발라드를 부르는 사람은 발라디어(Balladeer)라는 것. 세상에 발라더란 말은 없다. 옥 같은 프로그램에 묻은 아쉬운 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