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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Jul 27. 2016

부산행

연상호, 2016


개봉 이틀 만에 2백만 관객 동원.
개봉 5일 만에 500만 관객 동원.
그리고 7월27일 현재 관객 600만 명을 돌파한 화제의 영화 <부산행>.
이 작품을 지난 주말, 부산 '영화의 전당'에 가서 보고 왔습니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아주 인상깊게 본 터라 연상호라는 사람은
이미 수 년 전부터 관심의 끈을 놓치 않고 있었는데,
그가 만든 첫 실사 영화라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지요.
저에게 <부산행>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 봐야만 하는 영화였습니다.




한국형 좀비가 등장하는 전대미문의 재난



영화 <부산행>을 보기 전 제가 아는 정보는 이게 다였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 기대작을 앞뒀을 땐 되도록 그 영화와 관련된 정보를 부러 피하는 쪽입니다. 흔히 '스포일러'라 부르는 영화의 핵심 사전 정보 외 배경과 등장 캐릭터, 대략적인 플롯 등 작품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에 관한 정보를 미리 차단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제가 20 여 년간 영화를 감상해온 방법이고 또 그래야만 영화는 늘 더 큰 재미를 저에게 주었었습니다.



잘 만든 예고편입니다. 사실상 영화의 주역인 '감염된 좀비(단역 배우들의 연기에 박수를!!)'들은 감질나게 보여주면서, 어떤 심각한 사건이 터질 분위기는 직감케 하는 영리한 편집. 잠재 관객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켜야 하는 것이 영화 예고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다면, <부산행> 예고편은 적어도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 그 임무를 완수해냈다 저는 생각합니다.



<부산행>은 늘 일에 쫓기며 사는 펀드매니저 석우(공유)가 자신의 딸 수안(김수안)을 부산에 있는, 곧 이혼할 아내에게 데려다 주기 위해 KTX를 타면서 시작되는 재난 이야기입니다. 그 재난의 시발점은 바로 감염된 소녀 좀비. 영화 중간에 잠깐 나오지만, 이 감염은 석우의 투자로 기사회생한 바이오 회사가 독극물을 유출해 생긴 비극이었습니다. 왠지 익숙한 설정이다 했는데, 봉준호의 <괴물> 모티프가 된 '미군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이 있었죠. 차이라면 '괴물'은 혼자인데 비해 '좀비'는 기하급수적이라는 것. 그 무리의 시발점이 바로 '1호 좀비' 가출 소녀(심은경)였던 겁니다.



뜬금없는 소녀 좀비의 등장. 이젠 널리 알려졌다시피 사실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이 앞서 만들고 있었던 애니메이션 <서울역>의 다음 이야기입니다. 즉, <서울역>이 <부산행>의 프리퀄인 거죠. 석우가 수안을 데리고 서울역을 향하던 새벽, 하늘에서 눈처럼 내린 잿가루는 바로 전날 밤 <서울역>에서 일어난 재난의 암시였던 셈입니다. 심은경은 그 <서울역>에서 '가출 소녀' 성우를 맡은 인물이고, 다시 <부산행>의 첫 장면 첫 좀비 역을 맡아 짧고 굵은 연기를 펼친 것입니다. 그(서울역) 가출 소녀가 이(부산행) 가출 소녀인지는 8월18일, 애니메이션이 개봉되어봐야 알 일이겠죠.



영화는 일단 재밌습니다.
좀비와 인간의 피 튀기는 대치는 좁디 좁은 기차 속에서 꽤 스릴 있게 연출되었고, 조명 300대와 대형 LED 영상, 그리고 세트만으로 재현한 KTX의 속도감은 그대로 영화 자체의 속도감이 되었지요.

우는 모습은 살짝 '안습'이었지만 나름 선전한 공유의 연기,
영화에서 유일한 유머 코드였던 마동석의 고군분투,
임신부 역을 실제처럼 소화해낸 정유미는 그런 작품의 '스피드'에 클러치와 브레이크로서 안정감 있게 작용했구요.


상업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족애를 강조한 건 아니다.
인간 사회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가족애가 아닌가 싶다.

- 연상호 -


다만 관객들이 '신파'라 일컫는 작위성은 이 영화의 큰 오점으로 지적되고 있는데요. 연감독의 말처럼 "인간 사회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조한 "가족애"임을 감안한다면 마냥 비판할 거린 아닌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오락 영화이기도 하지만 해외 언론들이 한결 같이 지적한 바,
대한민국을 풍자하는 사회(비판)적 작품이기도 하거든요. 기존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만 봤을 때도 이러한 성향은 아주 당연한 귀결이죠. 그는 가족애를 강조했지만, 연상호에게 가족애란 극한상황에서 끊어질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연대이기도 합니다. 바로 인간의 개인주의 성향 때문입니다.


극한 상황에 몰린 사회에서 사람들은
개인주의 성향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러면 최소 단위인 가족조차
연대하기 힘들어진다.
이게 <부산행>이 보여주는 세계다.

- 연상호 -



용석(김의성)이라는 인물을 봅시다.
그는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의 상징 같은 인물로 그려집니다.

버스 회사 상무인 그는 프랭크 다라본트의 <미스트>(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에 끼친 이 영화의 영향을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죠)에서처럼 비열한 군중심리를 이용해 좀비에 쫓기는 인간들 사이에 의심과 경계를 조장합니다. 그리곤 자신은 끝까지 살아남으려 발버둥을 치죠. 자, 여기에서 영화는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용석을 욕하는 당신은 
같은 상황에서 용석이 아닐 자신이 있는가?



상화(마동석)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지만
제가 보기에 그 성정은 말 그대로 '극적인' 성정이었습니다.
만들어진 정의였던 거죠.
자신을 버리고 가족과 타인을 구하는 이른바 '희생과 영웅'이라는 헐리우드적 문법이 다소 불편했던 건 그래서였습니다. 전 오히려 용석의 이기심에 더 현실감을 느꼈고, 연상호 감독도 아마 용석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평소 자신의 입장을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을 겁니다. 

이 영화는 허구이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품이에요. 아니, 현실을 직시하라고 다그치는 영화입니다. 속도감과 영화적 재미에만 취해 마지막 어둔 터널을 빠져나왔다면 당신은 이 영화를 반도 제대로 못 본 것이라 저는 감히 얘기하고 싶습니다. 


                    <부산행> 연상호 감독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작품 <새벽의 저주>와 <아이 앰 어 히어로>


닫힌 문과 터널.
<부산행>은 이 두 가지 이미지로 압축됩니다.
사람과 사람, 집단(좀비)과 집단(잠재적 좀비=인간) 사이 굳게 닫힌 문.
이것을 열겠다는 의지가 <설국열차>처럼 뜨겁게 불타오르며 <부산행>은 희망을 말합니다.
대한민국의 필요악 같은 군대가 민간인에게 겨눈 총부리. 
그러니까 잔인할 뻔한 국가 폭력이 따뜻한 국민 구조로 뒤바뀌는 마지막 터널 신에서도 연상호 감독은 절망보다는 희망에 주목하려 하죠.



각박한 세상.
나 하나만 잘 살기에도 벅찬 이 곳에서 연대나 정의 따위 사치로 여기는 우리 현실이 <부산행>을 통해 전시되고 또 반성되길 기대해봅니다.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는 이야기,
그 목적지가
안전한지조차 모르는 이야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다.
그게 인생을 함축한다고 생각한다.

- 연상호 -


물론 저는 하나 밖에 모르는 좀비가 되긴 싫습니다.
둘도 아는 인간으로서, 서로를 생각하고 보듬을 줄 아는 삶을 추구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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