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치들, 2016
한 사람 일생을 보여주려는 ‘전기(傳記)영화’는 사실 그럴 수 없다는 역설적 한계를 동시에 떠안은 장르이다. 일단 2시간을 기준으로 1~2시간을 보태거나 뺄 수 있는 상업 영화의 러닝 타임 속에 개인의 일대기를 다 집어넣는다는 자체가 무리이고, 설사 집어넣는다 해도 작품은 집중력을 잃고 비틀거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상의 시라는 것을 감안해 볼 때에도 개인이 겪은 에피소드를 시시콜콜 소개, 설명하는 일이 그리 어울려 보이진 않는다. 사실 영화의 매력은 이미지의 예술적 편집 즉, ‘서사의 몽타주’에 있는 것 아니던가.
<호텔르완다>와 <아이언맨> 시리즈로 유명한 돈 치들이 각본, 감독, 주연까지 맡은 <마일스(Miles Ahead)> 역시 ‘재즈 킹’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 영화를 표방하지만 사실 영화가 주목하는 지점은 단 한 곳, 재즈와 관련해 거의 모든 것을 이룬 마일스가 코카인에 무릎 꿇은 70년대 중후반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버드>를 통해 보여준 찰리 파커의 비극과 올리버 스톤이 <도어즈>에서 묘사한 짐 모리슨의 착란이 교묘하게 얽힌 느낌이랄까. 전기 영화, 특히 스타 뮤지션을 다룬 전기 영화들은 늘 주인공의 ‘흑역사’를 주목해왔는데 돈 치들 역시 마일스 데이비스가 가장 아프고 거칠었던 5년에 초점을 맞추어 철저한 고증을 거친 목소리와 말투까지 그대로 연기해내었다. 이 영화를 위해 윈튼 마살리스에게 8년 동안 트럼펫을 배웠다는 뒷이야기 보다 돈 치들의 그 치밀한 연기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마일스의 일대기 보다 ‘인간’ 마일스에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과 여성 편력, 그리고 과거에서 온 프란시스 테일러(이마야치 코리넬디)와 행복 또는 파경이 이 영화의 세 가지 배경이라면, 조금은 애매한 캐릭터인 <롤링스톤> 기자 데이브 브래든(이완 맥그리거)과 프로 트럼페터 주니어(키스 스탠필드), 그리고 돈에 굶주린 콜롬비아 레이블 사이에서 뺏고 빼앗기는 마일스의 미발표 음원 테잎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여기서 자동차 추격 신이 굳이 필요했느냐는 평가는 미뤄두고서라도 돈 치들의 연출력과 연출 방식에 있어 관객들 각자가 달리 가질 호불호는 분명 따져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즉, 자신의 감독 데뷔작에서 돈 치들은 가능성 있는 연출력은 보여준 대신 연출 방식에 있어선 좀 더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게 글쓴이의 생각이다. 예컨대 여섯 배우로 밥 딜런의 일생을 정리한 토드 헤인즈의 <아임 낫 데어> 정도는 아니더라도, 난해한 플래시백이나 맥락 없는 총격 신으로 영화 감상에 혼란을 준 것은 분명 패착으로 보이는 것이다. 쉬 건드리기 힘든 공룡 뮤지션의 전기 영화를 놓고 선택한 ‘5년의 공백’이라는 방향 설정은 좋았지만, 재미와 팩트를 함께 잡으려 총격 신이라는 무리수를 둔 점은 못내 아쉽다. 반면, 허비 행콕(건반)과 웨인 쇼터(색소폰), 개리 클락 주니어(기타)와 안토니오 산체스(드럼)라는 황금 라인업의 합주로 풀어낸 엔딩 시퀀스는 돈 치들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과욕에서 감독이 된 게 아니라는 걸 방증하는 멋진 장면이었다. 역시 전기 영화 이전에 음악 영화여서인지, 음악이 영상을 이끄는 장면들은 이 외에도 하나같이 괜찮았던 기억이다.
그렇다. <마일스>는 마일스 데이비스를 다룬 드라마 이전에 음악 영화이고 재즈 영화이다. 작품 구석구석에 담배 연기처럼 배인 재즈 냄새는 그래서 영화 OST에도 고스란히 담겨 음악으로 그를 먼저 안 전 세계 재즈 팬들에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선물이 되었다. 재즈를 좋아하는 마약 거래상 청년의 여친이 "제일 괜찮았다"며 입으로 흥얼거린 ‘so what’, 자신의 집 지하에서 동료들과 연습했던 ‘nefertiti’ 등 마일스 데이비스의 주옥같은 곡들, 술과 약에 전 마일스의 쉰 목소리를 그대로 재연한 돈 치들의 대사(dialogue), 그리고 재즈 피아니스트 테일러 에익스티와 로버트 글래스퍼(그는 이미 지난 5월 ‘Everything`s Beautiful’이라는 앨범으로 마일스를 따로 추억한 바 있다)의 오리지널 다섯 곡이 영화 전반을 자욱하게 수놓는다.
그 중 5, 6번 트랙이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마일스가 라디오 DJ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Kind of Blue’ 얘기 좀 그만 하고 관현악 편곡가 길 에반스가 참여한 ‘Sketches of Spain’에서 한 곡을 틀어 달라 주문하는 장면 때문이다. 곡 제목은 ‘Solea’. ‘외로움’이라는 뜻이다. 영화 <마일스>는 결국 마일스 데이비스의 외로움을 비추려 한 영화였던 건 아닐지, 이 곡을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